어디든 떠나야 했다. 여기만 아니면 될 것 같았다. 결국 이 자리로 다시 돌아올 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잠시 쉼표를 찍고 싶었다. 결혼과 육아로 이십 대에 내 길이라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했던 공부를 내려놓았다. 잠시 내려놓고 다시 시작할 줄 알았는데, 미국에서의 육아는 쉽지 않았다. 친정, 시댁도 없이 철저히 혼자였다. 내 편이라곤 남편뿐이었는데, 그도 못다 한 공부를 하느라 제 형편돌보기도 버거운 상황이었다. 경제적 어려움도 있었기에 내가 하고자 했던 것들은 우선순위에서 점점 아래로 밀려났다. 어쩌면 그때 잠시 내 상황에서 거리를 두고 객관적인 나를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면, 잠시 쉼을 가졌다면,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면 지금 아쉬움이 덜할 수도 있었겠다.
발 디딘 곳을 치열하게 지키며 살아내는 일도, 잠시 쉼을 가지는 일도 각자의 용기이다.
배터리가 약한 나는 쉼을 가지며 충전해야 되는 사람이다.
25년을 아프신 엄마와 병간호하시는 아버지를 지켜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 편할 대로 띄엄띄엄 효도하면서도, 그래서 더 미안한 마음 때문에 문득 모든 관계로부터 끊어지는 상상을 하면서 나는 몇 달 전부터 이미 떠나고 있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입시의 터널을 지나 대학생이 되었고, 더 이상 그들의 밥과 청소를 걱정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실은 내가 그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지 않았을 뿐 이십 대의 그들은 나보다 더 튼튼한 팔과 다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각자의 방은 스스로 청소하고 거실과 화장실 청소는 아들과 딸에게 대화를 통해 서로 나누어하기로 결정하였다.
비행기로 한 시간 떨어진 제주지만 나는 아주 먼 길을 떠나는 마음이었다. 일단 노트북을 챙겼다. 그리고 편한 옷들, 예쁜 옷들만 챙겼다. 나를 위해 아주 잘 살아갈 생각이었다. 제주에 가서도 도서관 사용을 할 수 있도록 책이음 서비스 신청도 하였다.
그렇게 여름, 겨울, 여름방학마다 제주 살이를 세 번 했다. 제주로 숨바꼭질을 하고 돌아오면 몸도 마음도 나는 건강해져 있었다. 내가 산책하고 만난 제주의 이곳저곳은 시골 동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돌담길이며, 해지는 노을이 있는 곳이었고, 눈길 주는 곳마다 살아있는 바다가 넘실거렸다. 또한 신선한 바다음식과 소박한 할머니의 밥상이 있는 곳이었다.
제주의 아름다운 명소를 돌아보는 관광을 위한 한달살이도 아니고, 학원과 도시생활에 지친 아이들을 데려온 멋진 젊은 엄마들의 일년살이는 더더욱 아니었다.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쉼을 위한 시간이었고, 두 번째 스물다섯을 위한 축구의 하프타임 같은 시간이었다. 어떻게 잘 놀 수 있을지 기대된다 나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