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이트커피 Feb 12. 2024

살다 보니 이런 설도 있구나~

맏며느리 설날 귀경길

저는 맏며느리입니다.

해마다 명절이면 고속도로 정체길에서 몇 시간을 버티며 이십 년 넘게 경부선과 남해고속도로를 다녔습니다.

지난 추석은 마침 코로나가 끝나고 처음 맞이하는 명절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새벽 6시에 출발하여 16시간 걸려 부산시댁에 도착하였습니다.

간만의 명절에 함께 모이니 그날 하루는 각오를 하고 도로를 나서야 합니다.

가족을 만난다는 기쁜 기대도 있지만 서너 시간이면 갈 거리를 16시간씩 길 위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으면 답답한 마음도 듭니다.

온 국민이 요이땅  같이 출발해서 도로에서 만나는 기분입니다.

시댁은 크게 음식을 하지 않지만 맏며느리의 마음은 꼭 무엇을 해서라기보다 명절이면 그냥 마음이 부산스럽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설날 용돈도 챙겨드리고, 조카가 내려올진 모르겠으나 이번엔 7급 공무원시험도 되었다던데 용돈을 좀 더 두둑이 줘야 하나, 고민도 생깁니다.


작년까지는 보통 설날아침 차례를 지내고, 아버님께 세배를 드리고, 아침상을 치우고 대충 정리가 끝나면 남해 친정으로 떠납니다. 그때부터 고속도로에는 극심한 정체가 일어납니다. 모두들 시댁은 부산이고 친정은 남해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평소에 두 시간 반 세 시간이면 갈 거리가 명절 당일날에는 혼잡으로 두 배이상 걸립니다. 이런 도로 사정으로 명절이 무서울 정도였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친척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기에 힘들어도 감수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하지만 이제 남편도 오십 중반을 넘어가니 장시간 운전이 힘드네요.


올해에는 다른 설을 맞이하였습니다.


이번 설날에는 시댁을 가지 않았습니다. 지난주에 사실 먼저 다녀왔거든요. 해운대 콘도를 빌려 남편이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명절이 되면 좋겠다고, 어머니와 아버님 모두 모셔와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구순이 넘으신 아버님은 오랜만의 해운대 바다가 좋으신지 큰아들과 해안길 산책도 다녀오셨습니다. 어머니와 어색하게 어깨동무하시며 사진도 찍으셨습니다. 대학생이 된 손주들과 지난 살아온 얘기도 들려주시며 술도 한잔 하셨고요, 술김에 살아오신 어려웠던 시절 얘기도 아이들에게 풀어놓습니다. 다음날 준비해 간 갈비탕 먹고, 세배를 했습니다. 올해도 할아버지 할머니 건강하시라는 손주들의 세배를 받고는 기분이 좋아지신 아버님의 지갑이 열렸습니다. 아이들의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어머니는 손주들이랑 아들내외가 명절에 친가에 내려오면 손님처럼 이것저것 준비하셔야 했는데 바깥에서 설날을 보내니 모처럼 편안하게 보내셨다고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번 설에는 친정을 다녀왔습니다.

아픈 엄마를 위한 남편의 배려이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병원에서 만났던 형제들을 친정집에서 명절에 제대로 본 게 얼마만인지 모릅니다.

설날아침에 친정에서 보내는 명절은 결혼하고 처음입니다.

열 명의 조카들을 위한 세뱃돈도 많이 나가겠네요.

이런 날은 좀 부담되지만 일 년에 한 번이니 기쁜 마음으로 지갑을 열어야겠죠.

조카들도 오랜만에 보니 부쩍 자라 있네요.

더 예뻐진 우리 아이들, 이번에 대학 가는 조카는 올해 버킷리스트에 남자친구 만들기가 있다고도 하고, 취준생도 있고, 군입대를 앞둔 조카도 만나며 오래간만에 시끌벅적한 명절을 마주합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명절이면 각자 집에 간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던데요.

그건 웃자고 하는 말일테고, 예전엔 여자들은 부엌에서 애쓰고 남자들은 리모컨 들고 안방을 점령했다면 설문화도 시대에 따라 변해가고 있는 것이 실감 납니다. 차례도 간소화되고 도와주는 남편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으니까요.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이 모두 행복한 설이면 좋겠죠. 누군가에게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명절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확인하며 정을 나누는 설문화가 정착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왜인지 남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마음 한편이 편하지는 않네요. 이번 설은 도로 위에서 차가 막힌 것도 아니고, 음식장만으로 힘들 일도 없었는데 왜일까요. 부산에 계신 아버님도 괜찮다고 하시며 친정부모님 인사 잘 드리고 오라고 하셨는데 아버님의 그런 마음이 감사하면서도 나이 들어가는 부모님들이 안쓰럽기만 합니다. 사랑하는 부모님들이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라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You are my G.O.A.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