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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남의 독후감
- 유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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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을 쓰기가 두려운 책을 만났다.
유영만 교수의 <유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

니체는 "누군가가 자신의 피로 쓴 글만을 나는 사랑한다...나는 한적하게 글 읽는 자들을 증오한다"라고 했는데 그런 책에 대해 감히 무슨 평을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연거푸 세 번이나 읽었다.


코로나 시대가 우리에게 준 유익이 있다면 무엇일까? 나 자신을, 내가 추구했던 가치를, 내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익숙한 무리에서 벗어나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동안 내가 살아온 방식에 회의를 품고 있을 때쯤 이 책이 다가왔다. 이 책은 망치처럼 나를 깨고 송곳처럼 나를 후벼 팠다. 우리가 니체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말은 고작 "신은 죽었다"라는 한 마디 정도인데 작가는 니체의 주옥같은 아포리즘 113개를 통해 독자들을 깨우고 흔들고 뒤집어 놓는다.


작가는 말한다. "우리가 니체를 통해 배워야 할 것은 길을 찾는 방법이 아니라 길을 잃는 방법이다" 세상에, 길을 잃는 방법을 전하는 책이 있었던가. 그럼에도 이 책은 끊임없이 자아를 찾도록 도전케 하고, 자기를 극복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는 전복과 파괴를 통해 창조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부정에서 긍정을 읽어내게 하고 절망에서 희망을 불러오게 한다.


니체, 그는 철학계의 이단아였다. 냉철한 형식과 엄격한 형식을 중시해 온 '아폴론적 인간'보다 창조적 충동과 직관적 판단을 강조하는 '디오니스소적 인간'을 찬미한 사람이다. 니체는 오랜 세월 서구 철학이 굳건하게 구축해온 형이상학을 무너뜨리고 그 위에 의지의 철학, 즉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충만케 해야 한다는 철학적 토대를 구축한 사람이다. 니체처럼 삶과 철학을 동시에 추구한 사람이 있을까. 기존의 철학은 실제적이지도 실용적이지도 않았다. 니체 철학은 역경 속에 있는 사람들을 아름다운 경력으로 승화시키는 지혜의 스승이다.


니체는 우리에게 생소한 단어, 위버맨쉬 (Übermensch, Overman)를 통해 끊임없는 자기 극복과 변신을 강권한다. 니체는 진정한 자유를 회복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사랑하는 인간을 위버멘쉬라고 말했다. 위버멘쉬는 현재의 나를 넘어서 어제와 다른 내가 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 이 땅에서 우리 모두가 스스로 만들어가야 할 참다운 인간의 모습이다. 이는 신앙을 통해 추구해야 할 초월적 인간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우리가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구현해야 할 새로운 인간상이다. 위버멘쉬는 모든 개인 자신의 존재로 새로운 자, 유일한 자, 비교할 수 없는 자, 스스로 법칙을 세우는 자, 스스로를 창조하는 자라고 정의한다. 이 얼마나 도도하고 가슴 뛰는 정체성인가.


그럼에도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이겠지만 하루에도 열 번 자신을 극복하라고 권한다.

그러기 위해서 고독의 유익을 넘어 발전적 (창조적) 몰락의 길을 찾아가라고 말한다. 또한 내 주위의 하찮은 자들과 가엾은 자들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그는 "최소한 하루 1/3을 자신을 위해 가질 수 없는 사람은 그가 장관이든 노동자든 상관없이 노예다"라고 말한다. 아, 나는 노예였다. 하마터면 안주할 뻔했다.


작가는 책에서 차라투스트라는 니체의 분신이라고 말했지만, 작가야말로 차라투스트라의 분신이다. 그래서 자신을 유라투스트라로 불렀나 보다.


이 책은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교만할 수 없게 만든 책, 아무리 못난 사람도 분연히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은 니체 철학에 비춰 우리의 삶을 근본적, 총체적으로 재점검하고 성찰하게 만드는 책이다. 세 번을 읽었지만 아직도 가슴이 뛴다.


책 읽는 남자
독후남 이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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