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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하나 바꿨을 뿐인데

사랑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다.

며칠 전 토요일 오후 3시 와이프와 함께 손님을 만나기로 했다. 오전에 아내가 외출하기 전 2시까지 돌아와서 같이 출발하기로 했다. 나는 출발 준비를 다 마치고 아내를 기다리는데 2시가 못 돼서 아내한테서 전화가 온다. 2시 20분쯤 집에 도착하겠단다. 약속시간에 늦겠으니 와이프가 나한테 먼저 가서 손님을 만나고 있으면 30분쯤 있다가 오겠다고 한다. 그러자고 하며 전화를 끊었지만, 아내도 같이 대화를 들어야 하는데 손님이 두 번 설명하게 할 것 같아 약속을 늦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약속시간을 30분 늦추자고 양해를 구했다. 다행히 그분이 흔쾌히 동의해주셨다.


이때 아내에게 어떻게 문자를 보내야 할까?

처음에는 "30분 늦췄으니 빨리 와~"라고 썼다가 이내 고쳤다.

"30분 늦췄으니 천천히 와~"


처음 작성한 문자를 보내든, 다시 고친 문자를 보내든 그런 줄 모르는 아내는 아무 느낌이 없었겠지만, 한 단어를 고친 내 기분이 오히려 좋아졌다.


말 한마디로 사람의 기분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 

신혼 초 나는 매사 부정적인 말투를 쓰곤 했다. 

집안에서 물건을 찾다가 못 찾으면 아내를 향해 "이거 어디 갔어? 어디에 뒀어?"라고 했다.

아내는 그런 말투를 무척 싫어했다. 자신이 마치 책망받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다음부터는 문장을 바꿨다. "이거 찾는데, 못 찾겠네?"

이 말투는 아내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 물건의 소재를 묻는 거다. 그런데 아내가 와서 보면 한눈에 찾아낸다.

아내를 책망할 일이 아니라 내 눈썰미를 책망해야지.


댓글은 부메랑이다.

요즘 언론 기사나 SNS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섬뜩할 때가 많다. 온통 비난, 욕설 투성이다.  특히 익명으로 기사 댓글을 다는 경우 거의 싸움 수준이다. 심한 상처를 입은 당사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런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결국 그런 삶을 살게 된다. 내 생각과 말이 곧 나고, 나의 삶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댓글을 쓸 때 이 글을 보는 상대방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고쳐 쓰는 경우가 많다. 특히 상대방의 입장과 다를 때는 더 그렇다.


말이든 글이든 잘 가려서 쓰자. 

 

국가대표 가정행복코치
이수경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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