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백수로 산다는 것
미국에 온 지 약 50일이 되었을 무렵
난 여전히 남편과 함께하는 주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우린 자녀가 없어서 아침부터 애들 학교 보낼 준비하고 때때로 데리러 가지 않아도 되니 남편이 회사 간 이후로 낮시간을 온전히 나만을 위해서 썼다.
작은 오피스텔에서 옮겨 온 우리의 첫 신혼집은 두 명이 쓰기에 매우 컸고, 집 안을 오가며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많이 넓어진 덕분에 집에만 있어도 크게 답답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보낸 이삿짐이 도착하지 않아서 최소한의 짐과 미국에서 구입한 일부 가전을 제외하고는 텅 비어 있었지만 미국에서의 새로운 일상이 설레고 좋았다.
바깥은 여전히 공사 중이었고,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라던 부동산 리얼터의 말이 무색하게 단지 전체가 완공되기까지 1년이 더 걸렸다. 덕분에 미국에서 집 짓는 과정을 때때로 볼 수 있었다.
지하 공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나무로 짓는 집이라 말 그대로 "뚝딱뚝딱" 짓는데 동화 아기돼지 삼형제에 나오는 둘째 돼지가 집을 짓는 모습을 실제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제외하고는 평온했던 일상.
남편이 출근을 하면 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거나 새롭게 시작한 블로그를 했고,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나름 영어공부를 위해 미드 프렌즈(friends)를 봤다.
그리고 이사 온 지 3개월 만에 드디어 이삿짐이 도착했다.
텅 비어있던 집에 익숙한 물건들로 채워졌고 한동안 신혼집을 꾸미는데 시간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뭐가 그렇게 무서웠나 모르겠지만 초반에는 더더욱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두려움이 많을 때라 생활반경이 굉장히 좁았고, 해가 진 이후엔 밖을 나가지 않았다.
(집 앞이 계속 공사 중이라 주변이 어수선하고 외부 사람들이 많다는 점도 한몫했지만) 낮에도 마냥 집에서만 지내는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거나, 근처 마트나 공원을 제외하고 딱히 어디를 가야겠다는 생각도 크게 들지 않았다.
그땐 운전면허도 따지 않았을 때라 평일 낮에는 갈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다.
아주 가끔 우버를 불러 근처 쇼핑몰에 다녀오거나, 걸어서 2-30분 거리의 마트에 가는 게 다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걸어서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는 동네라 잘 가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나의 일상은 한국에서보다 더 단조로워졌고, 아침 일찍 일어나 지옥철을 견디며 1시간 넘게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요리가 서툴지만 매일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평범한 전업 주부의 모습으로 백수의 삶에 익숙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