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준비

by yessay

냉장고를 비웠다. 아니 비우는 중이다. 이곳에서 지낼 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아 이제는 정말 비워내야 한다.

새로운 곳으로 거처를 옮긴다는 것은 현재 있는 공간과의 이별이다. 매일 나와 함께 지냈던 이 공간이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이에게,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리를 내어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어쩌면 더 친근하게, 더 멋진 인테리어로, 내가 이곳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설렘보다 더 큰 설렘을 갖고 애정을 쏟아줄지도 모른다.

가능한 한 빨리 계약하고 싶다는 다음 세입자의 말에서 이 집이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나도 그랬다. 최대한 빨리 이 공간과 함께하고 싶고 마음껏 소유하고 싶었다. 침대는 어떤 걸로, 옷은 어떻게 걸어두고, 식탁은 이런 디자인으로 고르고. 좁긴 해도 혼자 지내기에 너무나 완벽한 공간. 작아서 오히려 더 아늑하고 소중하게 느껴지던 나의 집.

지내다 보니 이 공간이 너무나도 좁게 느껴졌다. 좁은 공간에 짜증이 나고 싫증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그래도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 때문이었을까. 몸과 마음이 지치면 생각나는 곳은 집이었다. 좁더라도 마음 편히 기댈 수 있는 곳. 누워 푹 쉴 수 있는 곳.

그렇지만 떠나기로 결정한 후 한 번도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일은 없었다.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함께한 정으로 이곳에 더 머물러있기엔 새로운 곳을 향한 갈망이 너무 커져버렸다. 더 이상 이 공간은 나를 만족시킬 수도, 기대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애정만으로 함께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므로.

다음 사람을 위해 깨끗이 비워본다. 나의 불평과 짜증을 조금의 남김도 없이 쓸고 닦으며, 이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던 나에게 주는 선물처럼. 깨끗하게 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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