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을 하는 관계

이 세상 단 한 조각이라도

by 어제의 오늘

거짓과 진실,

그 차이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었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그 진실을 어디까지 전해야 하는지도.

결국 끝나지 않는 문제였으므로

나는 또 그저 모른 척

외면하고 넘기고 마는 일이었다.


할머니와 나의 관계는 가족 그 이상이기에

우리 사이는 깊은 신뢰와 사랑으로 차 있었고,

그녀가 내게 진실된 삶을 보여주었기에

나 또한 그 앞에서 진실된 이가 되려 몸부림쳤다.








내 첫 거짓말은 무엇이었을까?

글쎄, 지금 기억나는 건

할머니의 동전지갑 속 사라진 500원짜리의

행방을 물었을 때?

아마 그녀는 알았을 것이다.


펼치지도 않은 숙제를 다 했다고 했던 날.

공부하겠다고 하고 친구집에서 놀았던 날.

가벼운 거짓말로 시작되었던 것들은

어느덧 무게를 가지기 시작했다.


운동회에 온 것이 엄마가 아닌 할머니라서

미안해하는 것을 느꼈을 때,

나는 할머니가 와서 괜찮다고 했던 날.


학예회에 온 할머니의 앞에서

자랑스럽게 준비한 춤을 추었던 날에도.


나는 괜찮았다.

그래도 이 거짓말은

순도 100%의 거짓말은 아니었기에.



거짓말의 무게가 늘어가는 것은 어쩌면

내가 철이 들어가는 것과 비례했던 것 같아.


학교에서 같이 놀던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던 날.

나는 졸업식 때까지 할머니에게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이것도 순도 100%의 거짓말은 아니었기에.

그저 새 친구들을 찾게 된 것뿐이라 여기면서.


그렇게 내가 할머니의 품을 떠나

미국에 사는 엄마에게로 가게 되었을 때,

마지막 한 번이라도 더 손을 잡고 싶은 나에게

할머니는 거짓말을 했다.

내 인생에 가장 차가운 모습으로.


물론 그 거짓말은 금세 들통이 났다.

엄마에게 미안하지만,

우린 무슨 사연 있게 헤어져버린 연인처럼

매일 전화를 하고 서로를 그리워하며

4년의 시간을 버텼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이 생을

이제는 그만두어도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도

나는 거짓말을 했다.

그때는 나 스스로도 조금 무서웠다.

내 죽음을 가장 가슴 아파할 할머니조차

떠오르지 않았던 때도 있었기에.


그래도 신은 나를 붙잡았다.

기어이 나를 세상에 더 머물게 하였다.


20대가 되면서 거짓말은 더 잦아졌다.

자취를 하고서는 더욱더 늘어났다.

힘든 일, 무서운 일이 있어도

말하지 않는 날이 늘어났고,

할머니에게 전해지는 말들은

대체로 가벼운 고민들이었다.


그리고 이제 30대에 들어선 나는

더 무거운 거짓말을 한다.


이제 그만 살고 싶다는 할머니에게,

이 고통이 언제 끝나냐고 묻는 그녀에게

괜찮다고,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어쩌면 100%에 가까울 거짓말을

습관처럼 내뱉고 있어.


'정말 괜찮아 질까?

이 고통이 내가 준 고통은 아닐까?'


마음에 스멀스멀 올라오는 질문들을

애써 무시하면서,

나는 나에게도 거짓말을 하고 있어.





정직한 어른이 되는 것은 어렵다.

아는 게 많아진 탓일까?

생각이 많아진 게 문제일까?

나는 나를 아끼는 사람들을 위해,

또 때로는, 아니 자주 나를 위해서

자꾸만 거짓말이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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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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