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걸스 오브 막시'
페미니즘의 사전적 정의는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견해'를 말합니다. 요즘 이 단어가 가진 의미는 본질적으로 '차별이 없어져야 한다' 보다는 특정 인물을 '조롱'하는 의미로 많이 쓰이는 것 같습니다.
아마 '페미니즘'을 언급하는 이 글의 서두부터 불편하신 분들이 많이 있겠지만 처음부터 이 단어에 대해 언급한 이유는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의 연관검색어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글을 쓸 때 자료 조사를 위해 구글링을 하는 편인데 영화 제목을 검색하자 '페미'가 같이 붙어 있었습니다. 연관검색어가 어떤 구조로 생기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사람들이 많이 그렇게 검색했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저는 이 영화를 단순히 '페미 영화'로 단정 지어 버린다면 다소 아쉬울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차별에 대해 말하고 있고 페미니즘을 넘어 백인과 흑인, 이민자에 대한 차별을 담고 있기 때문이죠. 동시에 소녀들이 부당함을 부당하다고 말할 줄 알게 되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 하이틴 영화입니다. 오늘 같이 볼 영화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걸스 오브 막시'입니다.
록포트 고교에서 11학년 맞이한 비비안은 첫 수업시간에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위대한 개츠비』에 대해 토론하게 됩니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이 작품에서 여성은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데요. 이 질문에 “왜 아직도 이 책을 읽죠?”라며 되레 물은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덧붙여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부자 백인 남자가 쓴 부자 백인 남자 이야기를요. 그것도 주인공을 참 안쓰럽게 그려놨죠. 아메리카 드림에 대해 배우려면 이민자를 다룬 책을 읽으면 되지 않나요.” 그녀의 말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끼어든 남학생에 의해 끊길 수밖에 없었지만 여태껏 학교에서 그저 수동적인 형태로 가르침을 받던 학생으로서 그런 질문 자체가 신선했습니다.
그렇게 잔잔하던 수업에 돌을 던진 소녀의 이름은 루시였고 전학생이었습니다. 말을 끊은 학생은 미첼인데요. 소위 말해 이 학교에서 '인싸'죠. 이 일을 계기로 미첼은 루시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게 되는데요. 보다 못한 비비안은 루시에게 그런 녀석은 무시하라고 조언했죠. 여기에서 루시의 대답은 예상과 달랐습니다. “왜 내가 걔를 무시해야 해? 걔가 행동을 똑바로 하면 되지. 조언은 고맙지만 나는 앞으로도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다닐 거야.”
와, 정말 멋진 소녀이지 않나요? 보통 괴롭히는 친구가 있으면 '그냥 무시해버려'라는 조언을 많이 듣게 되는데 말이죠. 그때까지만 해도 좀 별난 친구라 생각했지만 사건은 학교에서 열리는 럭비 경기 날에 터집니다.
경기장에 다 같이 모여 응원하는 자리에서 전교생에게 한 통의 문자가 도착합니다. 그 문자는 '올해의 리스트'인데요. 여학생들을 평가해 순위를 매긴 거죠. 그 주제는 최고의 손기술, 최고의 가슴, 제일 따먹고 싶은 여자, 최고의 엉덩이 등으로 거의 성희롱에 가까운, 아니 그냥 성희롱이었습니다.
그중엔 제일 순종적인 여자에는 비비안이, 언급하기도 쉽지 않은 리스트에는 전학생 루시가 랭크되었습니다. 깜짝 놀란 루시는 바로 교장 선생님께 리스트를 보여주며 전교생이 나를 이렇게 부른다며 이야기했지만 단순한 소셜 미디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립니다.
이에 분개한 비비안은 '막시'라는 매거진을 만들어 학교 화장실에 뿌립니다. 그동안 남학생들이 여학생에게 가해졌던 신체적 정신적인 피해를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말미에는 이에 대해 지지하는 여학생들은 손에 별과 하트를 그리고 등교해달라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손에 그림을 그리고 등교한 비비안은 주위 학생들의 손을 살폈지만 그림을 그리고 온 친구들은 없었습니다. 크게 실망한 비비안은 화장실에서 그림을 지우려고 하는데 화장실에서 만난 친구들이 그녀의 손에 그려진 그림에 '쿨하다'며 자신들의 손에 그려진 똑같은 그림을 보여주죠. 소녀들의 연대는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몸매가 드러나는 탱크톱을 입었다고 강제로 집에 보내진 소녀를 대신해 다음 날 전교생이 탱크톱을 입고 등교하도록 만들었고, 장학생 후보에 남학생만 단일 후보로 오르게 되자 실력이 뛰어난 여자 축구선수를 함께 후보에 올리기도 했죠.
혼자일 때는 실행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둘씩 해나가는 것을 보며 일종의 쾌감을 맛보기도 했는데요. 이렇게 만들어내는 작은 변화들이 훗날 이 소녀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이 될지 부정적인 영향이 될지 모르겠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자양분이 되겠죠. 갑자기 소녀들이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지 궁금해집니다.
막시(Moxie)는 우리나라 말로 '용기'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소녀들이여.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부당함에 용기를 내 부당하다 말하며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