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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Feb 11. 2021

폭탄 터지는 세상에서 태어난 아가야, 엄마가 미안해

영화 '사마에게'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나의 도시 알레포.
사마, 이 곳에서 네가 첫울음을 터뜨렸단다.
이런 세상에 태어나게 한 엄마를 용서해 줄래?
사마, 이 영화를 네게 바친다.


감독 와드 알-카팁(오른쪽)과 그녀의 딸 사마(가운데), 남편 함자(왼쪽). 영화 ‘사마에게'는 딸을 위해 엄마가 남긴 시리아 내전의 기록이다.


여러분은 뉴스나 신문, 다른 매체에서 ‘시리아 내전’에 대해 한 번쯤은 들어 보셨을 겁니다. 여기저기서 폭탄이 터지고 전쟁과는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상황을 말이죠. 저도 그중 하나인데요. 전쟁을 겪은 세대가 아니다 보니 ‘전쟁의 참혹함’을 제삼자가 되어 바라보는 느낌인 거죠.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제가 알지 못한 전쟁의 이면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몇 번이고 극장 밖으로 나가고 싶었는데요(실제로 나가는 분도 계셨습니다). 영화가 재미없어서가 아니고 참혹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전쟁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의 10%에 불과하다는 말에 충격받았죠.


어제까지만 해도, 아니 한 시간 전만 해도 옆에서 웃고 떠들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졌을 때의 상실감은 어떤 걸까요. 감히 짐작도 못 하겠는 이런 상황을 그들은 지금도 매일같이 겪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런 상황의 중심에 있는 여성이자 한 아이의 엄마가 남긴 기록입니다. 자신의 딸과 다음 세대에게 왜 이렇게 끝까지 싸울 수밖에 없었는지에 전달하려는 이유이기도 하죠.


저널리스트가 꿈이었던 와드는 스마트폰으로 전쟁의 참상을 담기 시작했고 이후 스스로 촬영 기술을 배워 알레포의 실상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2011년 아사드의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가 시리아 알레포 지역에서 일어났을 때, 영화의 감독이자 출연자인 와드(와드 알-카팁 분)는 저널리스트가 꿈인 대학생이었습니다. 청년들이 함께 모여 벽에 글씨를 쓰고 집회를 열어 시위하는 모습을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 것이 이 영화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후 스스로 촬영하는 기술을 배워 알레포의 실상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어느 날 아침 시민들은 개울가에서 시신이 떠내려오는 것을 발견하는데요. 이는 아사드 정권이 시위대들 중 일부를 잡아들여 고문하고 사망하게 했던 거였죠. 시신의 머리에 생긴 총상 자국은 시민들을 겁에 질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더 분노하게 했죠.


함자(함자 알-카팁 분)도 그중 한 사람이었는데요. 의대를 다니던 그는 알레포에 끝까지 남아 전쟁으로 인해 다친 사람들을 치료하기 시작했습니다. 진료 장비도 의사도 턱 없이 부족한 환경에서 환자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었지만 함자는 끝까지 남아 치료했습니다. 친구 사이였던 이들은 어느새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었고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됩니다. 그들 사이에선 ‘하늘'을 뜻하는 예쁜 딸 ‘사마(사마 알-카팁 분)’가 태어납니다.


매일 폭탄에 맞은 환자가 쏟아져 오는 상황에서 끝까지 버텨낸 의료진. 이중 병원을 지키다 포격으로 숨진 분들도 있다. 아기 사마를 안고 있는 사람이 함자.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이러니했던 건 그들의 태도였는데요. 밖에서 폭탄이 연신 터져도 집 안에선 결혼식을 올리고, 지하실에 숨어있는 상황에서도 ‘오늘은 죽지 않았다’며 웃어넘깁니다. 심지어 사마는 폭탄 소리가 나도 울지 않았죠. 반복되는 상황이 익숙해졌다곤 하지만 어떻게 일상을 살아낼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장면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새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이었는데요. 그날도 어김없이 폭탄에 맞은 사람이 병원에 실려 들어왔습니다. 환자는 만삭의 임산부였죠. 환자와 아기 모두 위험한 상황에서 긴급 수술로 아기를 꺼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뱃속에서 나온 아기가 울지 않았습니다. ‘아 이미 죽었구나' 생각했을 때 의료진들은 심장 마사지와 함께 아기를 거꾸로 들고 등을 쓸어내리기 시작했는데요.


몇 분이 지났을까. 눈을 번쩍 뜬 아기는 그때부터 크게 울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고 또 다치는 상황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그 작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의료진들의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일은 역사가 아닌 현재 진행형이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게 감독과 나의 바람. 영화를 보면서 일상의 소중함도 느껴보시길. 사진은 배경과 어울리지 않는 사마.


'이 일은 역사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일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으며 사람들은 이제 행동을 해야 될 때가 왔다.
그런 점에서 나는 영화에 대해 많은 희망을 가지고 있다.
-감독의 말 중에서-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역사가 아닌 현재 진행형'입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오늘 이 영화를 소개해드렸는데요. 영화를 보면서 제가 그랬듯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일상의 소중함도 함께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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