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아빠의 그림일기
저는 딸아이와 그림일기를 그립니다. 정확히 말하면 딸은 그림을 그리고 저는 그림에 설명을 덧붙이는 형태의 일기입니다.
언젠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록이 중요하다. 그런데 아이에게 일기를 쓰라고 강요하긴 싫다. 그럼 어떻게 자연스레 접근하지? 그래! 그거야!!!'
딸아이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올해(2019년) 초등학교 4학년이 됩니다. 이제 제법 글도 잘 쓰고 표현도 곧잘 합니다. 해서 제안했지요.
"아빠랑 같이 그림일기 그려볼래? 니가 그림을 그리면 아빠가 그 내용을 글로 적는거야. 시간이 지나서 보면 귀엽고 깜찍한 일기가 되어 있을꺼야."
딸 아이 표정은 미지근했습니다.
"뭐, 아빠가 그리 원하니 그려줄께."
거의 반 구걸로 얻어낸 결과입니다. 딸아이는 기분이 좋을 땐 하루에 한장씩, 재미있는일이 있을 땐 일주일이 지나도 작품을 안 줄때도 있습니다.
최근에 직장에서 키우는 토끼들이 새끼를 낳았습니다. 저희 집에서도 토끼를 키우고 있습니다. 딸아이는 동물을, 특히 강아지, 고양이, 토끼를 아주 좋아합니다. 새끼토끼를 같이 보러 갔었습니다.
"아빠! 너무 귀여워."
그 날 밤, 부탁도 안했는 데 그림을 그려 줬습니다.
"아빠, 토끼들이 너무 귀여웠어. 내가 아직 이름을 다 지어주진 못했지만 그림 그렸어."
그림을 자세히 보시면 알겠지만 한 마리, 한 마리, 특징을 잘 표현했습니다. 어찌나 귀엽던지요.^^
누나가 토끼를 좋아하니 꼬맹이도 토끼를 좋아합니다. 아직 누나만큼은 아니지만 토끼에 흥미는 있는 듯 합니다. 딸아이는 거의 토끼 박사급입니다. 토끼 관련 책도 읽고 관련 유튜브도 찾아보며 전문성(?)을 더하고 있습니다. 토끼의 행동만 보고도 기분을 읽을 정도라고 할까요? 하지만 꼬맹이는 아직 토끼를 만지는 것 자체를 무서워합니다.
딸아이는 이번 그림을 그리며 아주 좋아했습니다. 새끼토끼들이 그리 귀여웠나 봅니다. 자기가 직접 본 것을 감정까지 표현하여 그림으로 표현하는 재주가 대단합니다.
"이 그림 정말 귀여워. 특히 한마리, 한마리 특징을 표현한 것이 놀라울 정도야. 고마워. 이 그림 덕분에 아빠가 그림일기를 잘 표현할 수 있겠어."
딸아이는 약간 으쓱해하며 말했습니다.
"이번 그림은 특별히 내가 신경쓴 거니까. 글 잘 적어줘. 아빠, 아빠! 새끼토끼들 너무 귀엽지? 또 보러 가고싶어."
딸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동물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길을 걸을 때도 길고양이나 강아지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습니다.
"아빠, 저 고양이들 밥은 먹고 다닐까? 아빠, 강아지 함부로 만지면 안된데, 냄새부터 맡게 해주고 조심히 쓰다듬어야 해. 안그러면 강아지가 겁을 많이 먹는데."
동물을 좋아하고 나서 친구들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습니다. 좀 더 공감하게 되었다 할까요?
한 나라의 위대성과 그 도덕성은 동물들을 다루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 나는 나약한 동물일수록, 인간의 잔인함으로부터 더욱 철저히 보호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간디의 말입니다. 저는 동물들 뿐 아니라 같은 인간들, 특히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같은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물을 생명 자체로 존중하는 것, 사람을 사람 자체로 존중하는 것, 다름을 존중하는 것, 기본적 관계는 차이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딸아이의 그림일기 하나로 저 또한 많은 배움을 얻습니다.
내일 다시 토끼장에 갈 예정입니다. 이번엔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벌써 기대가 됩니다.
저는 토끼를, 동물을 존중하는 딸아이가 고맙습니다. 타인을 배려하려는 마음이 부럽습니다. 내가 낳은 내 자식, 이전에 한 사람의 인격체로 볼 때, 딸아이는 건강히 잘 자라주고 있습니다. 물론 저희 부모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진 않습니다. 저희들은 단지 딸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고, 강요하지 않고 이야기를 주로 했었습니다.
딸아이와 그림일기를 같이 쓰는 작업은 저에게는 또 다른 재밋거리 입니다.
딸과 아빠의 그림일기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