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제자가 결혼을 했습니다.
15년 전 입니다. 제가 첫 담임을 했던 반이 있었습니다. 중학교 였고 3학년 10반으로 기억합니다. 그 반에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흡연을 했으며 가출을 자주 했던 친구입니다. 그 친구를 잡으러도 많이 갔었고 가정방문도 갔었습니다. 속상해 하시는 부모님 앞에서 "제가 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고 말씀드리고 손을 잡고 나와 같이 목욕탕도 가고 국밥도 먹으러 갔습니다.
밝은 아이였습니다. 못된 짓은 곧잘했지만 잘 웃고 털털한 친구였습니다. 집도 학교에서 가장 가까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부모님이 엄하셨습니다. 아이는 자유로웠습니다. 갑갑했을 겁니다. 해서 이 친구는 살기 위해 가출을 하고 소위 말하는 일탈행동을 했었습니다. 아무튼 졸업을 무사히 했고 저는 한동안 이 친구를 잊고 살았습니다.
몇 년 전, 우연히 성인이 된 이 친구를 만났습니다. 여전히 쾌활했습니다.
"어! 샘!"
"어! 오야! 태X아, 잘 살았냐!"
"네 샘, 제 앞가림 하고 삽니더."
"ㅋㅋㅋㅋㅋ그래 잘 자랐네. 보기 좋다. 다행이다 임마."
"네 샘, 술한잔 합시다."
"좋치. 이제 니가 사라."
"넵!!!"
기분좋게 헤어졌습니다.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전화가 왔습니다.
"따르르르릉"
딸칵!
"여보세요?"
"샘! 접니다!!!"
"오야. 뭔일이고? 돈 필요하나?"
"ㅋㅋㅋㅋ아입니더. 저도 돈 법니더. 샘. 부탁이 있습니더."
"뭐냐?"
"저 결혼합니다. 주례 좀 서주십쇼."
"뭐??? 주례????"
사실 저에게 첫 주례 부탁은 이 친구였습니다.
"내가 무슨 주례를 선 단 말이고. 됐다마, 더 훌륭하신 분들 많이 계신다 아이가, 연륜 있으신 분께 부탁드리라."
"아입니더. 저는 결혼하면 무조건 샘에게 주례를 부탁할려고 마음 먹고 있었습니더. 꼭 좀 서주시소."
"ㅋㅋㅋㅋㅋㅋㅋㅋ니가 결혼을 한다니, 너무 대견하면서 우습다. 나는 니 과거 다 까발릴껀데 괘안나?"
"ㅋㅋㅋ네 괘안습니더. 제가 결혼하는 친구도 제가 중 3때 사겼던 친굽니더. 제 과거 다 압니더."
"그래? 좋아. 엉망징창 결혼식을 원한다면 기꺼이 서 주마."
"네. 샘 부탁합니더. 고맙습니더~~~"
그 후, 결혼할 아내분과 함께 저희 동네로 왔습니다. 밥 한끼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당시 가지고 왔던 과일바구니를 소개합니다.
<비행소년 장가갑니다. 따끔한 주례 부탁드립니다.>
글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과일 바구니를 받자 마자 말했습니다.
"아이고, 이런 거 필요없는데...ㅋㅋㅋㅋㅋ근데 너무 재밌다. 근데 오타가 있는데? 비행소년이 아니고 양아치 청소년이잖아."
"아 샘!! ㅋㅋㅋㅋㅋ 제가 순화 좀 했습니다."
한 시간 정도 새신랑, 새신부와 저녁을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즐거운 식사자리였습니다. 일어설 때 쯤 말했습니다.
"태X아, 니가 내를 좋게 기억해 줘서 정말 고맙다. 난 그리 니한테 잘 한 것 같지도 않은데..."
새신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아닙니다. 이이가 결혼 하자고 했을 때부터 주례는 무조건 부탁할 샘이 있다고 했습니다. 바로 샘이셨어요. 이이는 샘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고맙습니다. 첫 담임하고 정말 가진 것은 열정밖에 없고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울 정도로 아이들에게 못했었는데...태X아, 정말 고맙다. 그 날 나름 최선을 다하마!!"
"네 샘!!! 고맙습니더!"
어찌고 고맙던지요...^^
제가 아직 젊은 나이(?)라 주례서기엔 부담이 컸습니다. 허나 이놈이 워낙 강하게 부탁해서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될때로 되라. 내 마음대로 할란다.'는 생각으로 임했습니다.
"마! 샘 진짜 마음대로 한다. 니 과거 다 말할끼다."
"네 샘! 그리하셔도 됩니다. 저는 샘이 주례만 서 주시면 됩니다."
선생질을 하다보니 제자 결혼식에 주례를 서는 날도 오더군요.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소 아이들을 대할 때 존경받는 선생이 되길 바라지도 않습니다. 다만, '욕 듣는 선생은 되지 말자. 내가 저 선생만나서 인생 망쳤다는 소리는 듣지말자.'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납니다. 같이 생활 잘 해 준것만 해도 고마운데 저를 좋게 기억해주는 제자가 있다는 것은 선생으로서 분명 보람있는 일입니다.
좋은 선생이 좋은 제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자가 선생을 좋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첫 주례 사건으로 저는 또 다시 아이들을 만나는 선생의 마음가짐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후에 결혼식을 했고 저도 맡은 바 임무를 잘 완수했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더. 그 날 제 친구들이 주례샘 정말 최고였다고 부러워했습니다. 고맙습니더. 샘, 잘 살겠습니다!"
"앞으로 연락하지마라.ㅋㅋㅋㅋ. 그래 너거만 잘 살면 된다. 난주 또 보자. 행복하고~"
주례 서달라고 부탁하는 제자도 있고, 제가 선생질을 그리 못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안싸우는 부부보다는 싸우더라도 대화를 계속 하는 부부가 되길 소망합니다. 제자놈도 특별한 결혼이었겠지만 저 또한 특별한 결혼식이었습니다.
제자 부부의 건강한 앞날을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