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습관병

타고나는 것인가? 길러지는 것인가?

by 김기덕

Nature vs Nurture

실제 세상에서는 본성이냐 양육이냐 같은 논쟁은 없다.

시시각각 발생하는 유전자와 환경 사이의 끝없이 복잡한 상호작용에 의한 것이다.

- 가보르 마테


본성과 양육에 대한 논쟁처럼 시시한 것도 없다. 타고나는 유전자도, 그 후에 길러지는 환경도 모두 본인의 의지보다는 부모에 의해 결정된다. 지금 책을 읽고 있는 당신이 뭔가 상황이 별로 좋지 않다면 너무 자책하지 않길 바란다. 다만, 평균 수명이 길어진 지금은 양육 환경뿐 아니라 성인 이후 본인의 노력이 노년의 삶을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질병은 어떨까?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잘못된 생활 방식으로 인해 생기는 것일까?


안젤리나 졸리. 그녀는 미모와 함께 암과 관련된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외할머니와 엄마는 난소암으로, 이모는 유방암으로 사망했다. 그녀가 물려받은 BRCA1이라는 암 유전자는 드물지만 이 유전자가 있는 경우에는 암 발생률이 높아진다. 평생 유방암에 걸릴 가능성이 80%가 넘고, 난소암 발생 확률이 40%에 이른다. 미국 종합 암 네트워크(National Comprehensive Cancer Network, NCCN)에서는 이 유전자를 가진 경우, 유방암에 대해서는 18세부터 매년 의사의 진찰을 25세부터는 매년 MRI를 이용한 유방 검진을, 30세부터는 매년 MRI와 유방촬영술을 받도록 권장하고 있다. 난소암에 대해서는 35-40세 사이에 난소 절제술을 받기를 권고하고 있으며, 난소 절제를 하는 경우 여성 호르몬이 분비되지 않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폐경을 경험하는 나이까지 호르몬 보충요법을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결국 안젤리나 졸리는 '예방적'으로 양쪽 유방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고, 몇 년 뒤 난소까지 제거했다. 미리 수술을 해서 예방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많다. 다만 유전적으로 고위험군에 해당한다면 미리 대비를 하는 것이 좋겠다. 예방적 수술이 아니더라도 조기에 발견하게 되면 수술의 범위가 작아질 수 있기 때문에 조기 발견은 언제나 중요하다. 암의 종류에 따라 진행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검사 주기에 차이가 있으므로, 암의 가족력이 있는 경우라면 담당 주치의와 상의해 검사 주기와 방법을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행이라면, 유방암과 난소암을 일으킬 '가능성'을 높이는 이 유전자는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민족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데, 아슈케나지 계 유대인에서는 상대적으로 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건강도 유전일까? 보스턴에 사는 100세 이상 노인들을 연구한 뉴 잉글랜드 백세인 연구(New England Centenarian Study)는 100세 이상 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비교했다. 100세인 만 가지고 있는 공통된 유전적 특성을 찾아냈는데, 이 유전자를 바탕으로 100세 수명을 예측하는 모델을 만들었고 정확도도 77%였다고 하니, 장수에 있어서도 유전적인 요인이 중요한 모양이다. 110세를 사는 슈퍼 백세인에 대한 연구도 있었는데 40%가 3가지의 특징적인 유전자를 공유했다고 한다. 그런데, 바꿔서 보면, 그런 유전자가 없는 60%도 백세를 살았다는 것이니 이것은 보기 나름인 것 같다.


하와이에 가면 일본 사람이 많아서 놀랄 수도 있다. 단순히 일본 사람이 많을 뿐 아니라 상점에도 일본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고, 일본 음식점도 많다. 심지어 일본어로 되어 있는 간판이나 메뉴판도 많고, 한국 사람이 지나가면 일본말로 말을 거는 사람들도 있다. 하와이 거주민의 약 20%가 일본계 주민이라고 한다. 나라별로 흔한 질환들이 있는데, 이곳에 사는 일본인들에게 잘 생기는 병은 미국인과 비슷할까? 아니면 일본인과 비슷할까?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런 연구는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오사카에 사는 일본인과 하와이에 사는 일본인, 하와이에 사는 백인을 비교한 연구에서 오사카 일본인은 전립선암과 유방암, 대장암의 발생률이 낮았지만, 하와이에 사는 일본인은 전립선암은 하와이 백인의 절반 수준으로 증가했고, 대장암과 유방암도 하와이에 사는 백인과 비슷한 수준으로 증가했다. 반대로 오사카 일본인에서 많이 나타나던 위암의 경우는 하와이 백인 수준으로 감소했다. 사실 이민자 연구는 상당히 많고, 2세대, 3세대에 걸쳐 비교하는 연구들도 있지만, 결과는 대부분 비슷하다. 암 발생률은 거주하는 곳의 양상을 많이 따르게 된다.


일본에도 하와이와 비슷한 곳이 있다. 오키나와. 일본의 하와이라고 하는 이곳은 1996년 WHO가 '세계 제일의 장수마을'로 인정했다. 장수인이 많은 것을 기념해 오키나와 북단에 있는 오오기미 마을에서는 기념비를 세우기도 했다. 기념비의 내용은 이렇다고 한다. "80살은 사라 와라비(어린아이), 90살에 저승사자가 마중 나오면 100살까지 기다리라 하고 돌려보내라. 우리는 늙어가면서 더욱 왕성해진다. 장수를 논한다면 우리 마을로 오라. 자연의 은혜와 장수의 비결을 전수받아라. 우리 오오기미 마을 노인들은 이곳을 일본 제일의 장수 마을이라고 당당히 선언한다." 그런 이유로 한 때 삶은 돼지고기를 먹는 오키나와 다이어트가 유행하기도 했다. 하라 하치 부(복팔분)라고 해서 배가 80% 찰 때까지만 먹고 숟가락을 내려놓으라는 오키나와 말들이 유행하기도 했다. 오키나와식 식습관을 공부하고 따라 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그런데, WHO가 장수 마을로 인정하고 10년 뒤인 2006-2010 통계에서 오키나와는 기대수명이 최하위가 되었고, 비만율을 1위(45%)가 되었다. 일본인들이 하와이에 가서 산 것과 반대로, 하와이에는 70년째 미군이 주둔 중인데, 오키나와에 미국식 음식문화가 유입되고 토착화된다.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가 유행하고, 소바나 주먹밥 같은 일본 음식에 햄이 추가되고, 타코 재료를 밥에 올려 먹는 타코 라이스 같은 음식들이 만들어졌다. 오키나와에서는 일본식 된장국인 미소시루에도 햄을 넣는다고 하는데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의 부대찌개와도 비슷한 면이 있다. 어쨌든 오키나와의 햄버거 외식비용을 일본 1위로 평균의 1.5배나 되고, 미군의 전투식량으로 쓰이던 덴마크의 '튤립햄'이 유행해 일본 전체 소비량의 90%가 오키나와에서 이뤄진다고 한다. 이제 오키나와의 생활습관병 발생률은 일본 본토를 넘어 미국을 위협 중이라고 한다. 우리는 장수마을에서 불과 몇 년 만에 단명 도시가 된 오키나와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햐 한다.


결국 타고나는 것보다 주변의 환경이 더 중요하고, 지금처럼 평균 수명이 길어진 시대에는 부모를 떠나 혼자 독립적 생활을 하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길러지는 것보다 본인의 생활 방식이 건강에 훨씬 중요하다. 적어도 질병이나 건강 문제에 있어서는 본성이나 양육이 아니라 본인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나쁜 생활습관이 건강을 나쁘게 하고 질병이 더 잘 생기게 만든다. 이렇게 생활방식에 의해 발생하는 질병들을 생활습관병이라고 한다.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생활습관으로는 운동 부족, 나쁜 식습관, 음주, 흡연 등이 있다. 생활습관병 중에는 나이가 들면서 노화에 의해 조금 더 많이 발생하는 병도 있다. 고혈압의 예에서 본 것처럼, 이런 경우에도 적극적인 치료가 필수적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발생하는 생활습관병도 있는데, 서구식 식습관이나 운동 부족에 의해 발생하는 당뇨병, 치아우식증 등이 그런 예이다.


하와이의 무수비




오키나와의 주먹밥에는 큼직한 스팸과 달걀이 들어간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도 포크 타마고 오니기리라고. 포크는 영어로 돼지고기, 타마고는 일본말로 계란이란 뜻이다. 음식의 정체성처럼 영어와 일본말이 섞여 있다.

오키나와에 스팸이 들어와서 포크타마고 오니기리가 만들어졌다면, 하와이에는 일본식 주먹밥이 들어와서 스팸 무수비가 만들어졌다. 무수비는 감싼다는 뜻이다. 밥위에 스팸을 올리고 김으로 감싼 형태다. 2차 세계대전때 조업이 금지되어 스시를 만들수 없게 되자 스팸을 얹어서 먹은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스팸 무수비가 유명해진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이 크리스마스 무렵 하와이에서 골프를 치다가 그늘집에서 하와이안 무수비를 먹는 사진이 신문에 실린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는 이런 문화의 융합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좋은 부분만을 선별적으로 취한다면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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