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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예담 Sep 04. 2021

나홀로 서울살이, 나에게 생일상을 대접했다

외로움에 맞서 나를 지키는 방법

* 이 글은 전 글 <퇴근 후 치맥보다 따릉이가 더 시원한 과학적 이유>를 읽고 보시면 더 좋습니다. 



누구도 축하해주지 않는 생일날,
나는 나 자신에게 생일상을 대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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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전 주말까지 내 생활 패턴은 최악이었다. 옷가지가 책상에 널브러져 있었고, 바닥에는 먼지가 장판이 되어있었다. 또 배달시킨 치킨과 맥주가 쌓여 싱크대를 점령하였다. 내 생일만큼은 최악에서 벗어나고 싶어 친구들에게 만나자고 구걸 아닌 구걸을 했지만, 다들 각자의 사정으로 거부되었다. 이대로 생일을 혼자 보내면, 정말 우울하고 외로워 미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나를 위한 생일파티를 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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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상 메뉴를 아귀찜으로 결정했다. 사실 나는 친구와 밥을 먹을 때는 "나는 아무거나 괜찮으니까, 너 좋아하는 거로 먹자"라며 다른 결정을 미루는 편이지만, 생일만큼은 내가 정말 대접받고 싶은 음식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러니 자연스레 어린 시절 가장 많이 외식하러 나갔던 메뉴가 떠올랐다. 바로 아귀찜이었다. 부산 사람인 아버지, 어머니 모두 해산물을 좋아하셔서, 가족끼리 외식을 할 때면 항상 아귀찜을 먹으러 가곤 했었다. 나는 맵찔이라 잘 먹지도 못하면서, 그래도 맛있다고 항상 먹었던 기억이 떠올라 나를 위한 메뉴로 딱 맞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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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파티 전날 내 방을 깨끗이 청소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의 생일파티에 먼지가 굴러 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쌓여있던 맥주캔들과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땐 내 머릿속에 있던 쓰레기 같은 생각을 함께 버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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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생일날 아침 부지런히 장을 보고 아귀찜을 만들었다. 미리 예습했던 유튜브 레시피를 참고하되, 내 입맛에 맞게 이것저것 양념을 더 넣기도 했다. 열심히 요리를 준비하다 보니, 생일날 혼자라 외롭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어졌다.



완성된 아귀찜을 화이트와인과 함께 먹었다. 매콤한 콩나물과 토실토실한 살이 기대보다 맛있게 되었다. 맛도 맛이지만, 오롯이 나를 축하해준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하였다. 그렇게 혼자라도 행복한 생일 저녁을 보냈다.




나를 위한 생일 상을 차리지 않았다면, 분명 최악의 생일이 되었을 것이다. 세상에 나 혼자 있고, 그 누구도 나를 축하해주지 않는 듯한 외로움을 느끼고..


반면에 나를 위해 생일상을 차려주면서 나는 최악의 생활 패턴과 우울에서 다시 일상적 생활 패턴과 만족으로 돌아설 수 있었다. 오로지 나의 취향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내가 대접받는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알아갔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막연한 클리셰를 실천하는 시간이었다.


또 우울에 빠져 망쳐버린 생활패턴을 다시 정상적으로 되돌리는 기회가 되었다. 우울에 빠지면 의욕을 잃고 평소 자연스레 지켜왔던 루틴을 유지하는 것에도 힘든 기분이 든다. 그렇게 루틴이 파괴되고 나면 다시 더욱 깊은 우울로 빠져드는 악순환을 이룬다. 내 생일 파티를 위해 청소를 하며 일상생활의 루틴을 회복하는 기회로 삼았다.

마지막으로 생일 당일날 장을 보고 아귀찜을 만들며, 부정적 생각을 할 여유를 없애버렸다. 우울한 감정은 자기 자신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에서 촉발되기도 하는 데, 비관적 생각을 할 시간을 없애버리다 보니 우울한 감정 또한 사라져 버렸다.


나를 위한 생일상이 객관적으로 경제적이거나 맛집만큼 맛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극히 주관적으로 행복했다. 나를 대접하는 시간이 지극이 나를 사랑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후에 기회를 내어 나를 사랑하는 시간을 더 갖고자 한다.



*이 글은 위윌 자조모임 정회원 호수님이 작성하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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