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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안 Oct 06. 2024

‘우리’를 좋은 곳으로 이끌었던 그 시절의 ‘우리’

<스물다섯 스물하나>속 이진에 대하여

꿈을 향해 펼친 날개의 날갯짓은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다리에 채워진 족쇄에 의해서 별다른 힘을 내지 못한다. 족쇄가 채워진 채로 그저 하늘을 올려다 보는 새의 일생이란 무엇일까. 새는 날아야 하는데, 새가 날지 못한다면. 그건 죽음을 기다리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새는 하늘을 날지 못하고 죽음만을 기다리는 자신의 삶이 억울할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저 맑은 하늘이 우수수 무너지고, 쏟아져 내려버리기를 바랄지도 모르겠다. 하늘에 닿을 수 없으니, 저 하늘이 차라리 무너져 내린다면. 결과적으로 자신은 그 하늘에 가닿을 수 있을테니까.


새에 대한 비유는, <스물다섯 스물하다>속 백이진에 대한 비유였다. IMF로 아버지의 사업이 무너지고, 꿈이 사치가 되어버린 젊은 청년 백이진. 공부를 계속해야 할 그는 가족의 빚을 청산하기 위해 신문배달부와 DVD 대여점의 알바생으로 일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꿈은 사치다. 이진은 그저 하루 빨리 세계가 멸망해버리기만을 바라고 있다. 1999년을 살아가고 있는 이진은 2000년이 되면 세계가 멸망한다는 뜬 소문에 내심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허무주의에 빠진 백이진은 같은 시기, 자신과 똑같이 시대적 불운으로 꿈을 빼았긴 나희도를 만난다.



이 세상은 언제나 사람을 다치게 만들지만.

희도 역시 이진과 같은 상황. IMF 라는 시대적 불운에 의해서 펜싱부가 없어지고, 부모님은 좀처럼 지원해주지도 않는다. 꿈이라고 믿었던 자신의 우상은 자신을 적대시하기까지. 희도 역시 굉장히 어려운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어려운 상황에 만난 두 사람은 삶이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에서 보면 희극이라는 위로 아닌 위로를 나눈다. 가장 힘든 시기에 만난 두 사람. 특히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이진의 곁에 나타난 희도의 존재는 이진에게 무엇보다 특별했을 것이다.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말에 가타부타 따지지 않고, 그저 회사가 잘못했다고 말해주는 사람. 전적인 믿음으로만 가능할 법한 위로를 건네는 사람. 그게 바로 희도였다.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위로로, 이진은 삶을 멀리에서 보는 법을 천천히 익혀간다. 즐기고, 흘러가는 대로,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가족들을 다시 가정으로 불러오고 싶다는 꿈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선다. 


이 시기, 이진을 이끌었던 것은 희도의 순수한 마음이었다. 많은 것을 묻거나 따지지 않고, 그저 상대를 향해 보내는 전적인 마음. 전적인 지지, 그 마음은 우정처럼도 보이고, 단순한 애정처럼도 보이고, 깊은 사랑처럼도 보인다. 그러니까 이진은 희도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너는 나를 좋은 곳으로, 옳은 곳으로 이끌어”라고. 시간이 지나, 백이진이 정식으로 사회부 기자가 되고, 희도가 국가대표가 돼서 오랜 친구인 유림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한 시기에, 이진은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참사 앞에서 무력감을 느낀다. 대교가 무너지고, 백화점이 무너지고, 그만한 참사가 일어나는 데에도, 이 사회 곳곳에선 죽음이 끊이질 않는다. 그리고, 사회부 기자인 백이진은 그런 죽음의 한복판에서 죽음을 보도하며 깊은 무력감과 절망감을 느낀다. 항상 사고가 난 이후에, 죽음을 전하는 자신이 과연 이 일을 잘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 이진에게, 희도는 다시 한번 순수한 마음을 담은 위로의 말을 전한다.



오직, 순수한 당신의 마음 하나만으로.


“옛날에, 네가 한 말 기억나? 내가, 너를 항상 좋은 곳으로 이끈다고. 너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이끄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너무 힘들어하지 마. 힘내. ”


이런 순수한 위로는 순수한 마음을 간직한 타인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종류의 위로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순수한 위로는 때묻지 않은 위로이기도 하다. 그 순수함이 상처로 얼룩진 마음일 닦아내는 것 같고 말이다. 그래서일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픔에 강해진다는 의미는 아닌 것 같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오히려 점점 아픔을 더해가고, 점점 더 자신을 치유할 능력을 잃어가고, 그렇게 천천히 죽어가는 일인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오롯이 혼자일 때에만 그렇다. 혼자라면 사람의 마음은 쌓여가는 아픔들을 치유할 방법도 알지 못한채로 그저 그 아픔들을 더해갈 것이고, 삶에서 무언가 하나 하나 빠져나갈 것이다. 마치 하나 둘, 블럭이 빠진 채로 위태롭게 쌓여가는 젠가처럼. 위태롭게 쓰러져가는 나의 마음을 지탱해주는 것은, 나의 비어있는 마음을, 순수한 의도로 채워주는 타인의 마음 뿐 아닐까. 오직, 서로를 향해 보내는 순수한 마음 하나만으로 삶 전체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말을 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렇게 주고 받은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 살이에 다치고 무너질 것 같은 위태로운 마음이 어느정도 지탱될 수 있음을, 누군가가 채워준 마음이 내 삶의 일부가 되어 나를 지탱해줄 것임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으리라.

- <스물다섯 스물하나>, 2022, TV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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