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파트너>속 은경에 대하여
대형 로펌의 스타 변호사, 집에는 귀여운 딸이 있고, 내과의사 남편이 있고, 나이는 많아봐야 40대 초반. 누가 보더라도 그녀의 삶은 성공한 삶으로 보인다. 이는 드라마 <굿 파트너> 속 변호사 차은경의 이야기다. 하지만, 차은경의 삶은 그녀의 삶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불안정하기 이를 데 없고. 아니나 다를까, 드라마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불안한 삶은 작은 균열로부터 붕괴한다. 그렇다면, 완벽하게만 보였던 그녀의 삶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것은 어떤 이유에서부터 비롯된 것인가?
내 삶의 ‘전부’라고 믿었던 것들
우선 그 첫번째 원인으로 자신의 ‘삶의 전부’라고 믿었던 것들을 타자에게서 찾는 그녀의 태도에 있다. 그녀의 삶은 크게 두개의 기둥으로 유지되고 있다. 하나는 가정이고, 하나는 직장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은경은 직장에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하고 있는데, 이혼팀 업무에 열중하는 은경의 동기는 돈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알량한 정의감” 때문도 역시 아닌 것 같다. 그녀가 직장 생활에 열중하는 이유는 돈과 정의감이 아닌 두 가지로 추려낼 수 있을 법한데, 하나는 딸 재희의 미래를 위해서다. 아직 초등학생인 재희의 미래를 위해서 보통의 가장이 그러하듯이, 일단 많이 벌고 커리어를 이어가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의 이유는 의뢰인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을 열어 주는 이혼팀”의 업무에 충실하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초심은 시간이 지나서 조금 퇴색된 듯 보이며, 지금은 회사의 이익을 우선 고려하는 차은경만이 남아 있는 듯 하다. 만약 이 두 가지가 정말로 차은경을 이끌어가는 강력한 삶의 동기라면, 차은경의 삶이 위태로운 건 당연해보인다.
*<굿파트너>, 14 화
이해관계에 놓여진 타인은 언제든 당신의 기대를 저버릴 수 있다 : 직장이 삶의 기반이 될 수 없는 이유
많은 이들이 회사에 청춘을 바치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의 산업이 한참 부흥하고 성장해가던 시절에 특히 그랬다. 하지만 기업은 결국 이윤 추구가 제 1원칙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이 발생하지 않는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고, 기업은 감성적이지 않다. 기업의 몸집이 커질 수록, 임원들과 경영자는 재무제표만으로 회사의 손익을 따지는데, 재무제표에는 구성원들의 드라마는 포함되지 않는다. 기업은 기업의 실적이 안좋아지면 정리해고를 하고,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가져다 준 사람에게 사직서를 받아낸다. 이해관계에 얽혀있는 타인은 언제든 당신을 배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굿파트너> 속 차은경 역시, 회사의 스타 변호사로서 뛰어난 업무 처리 능력으로 이익을 가져다 줌과 동시에 스타성으로 마케팅 효과를 가져오며 회사에 많은 이익을 안겨줬지만, 이혼 스캔들로 여론과 언론의 도마 위에 올려지게 되자 회사로부터 버림받는다. 여기에 덧붙여 차기 오너인 정우진과의 스캔들은 현 오너 정재성의 심기를 건드렸고, 정재상은 차은경을 쓸만큼 쓰고, 대체제인 한유리가 나타나자 사람을 쉽게 교체해버린다. 기업은 어찌됐든 이해관계로 얽혀있는 집단으로, 기업이 어떤 노동자를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고 고용하는 것은 그 노동자가 그에 상응하는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 기대가 없다면, 기업은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IMF 이후 국내에 도입된 고용시장 유연화라는 이름의 계약직 근무 정책이야 말로, 기업의 냉혹한 면을 보여주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직장 자체는 그다지 신뢰할 것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삶의 전부를 쏟아 부을만한 어떤 것이라고 하기에 기업은 돈이나 잘 보정된 추억 정도밖에 돌려주지 못한다. 그래서 고용주를 위해 일하는 것이 고용자의 숙명이라지만, 본인만의 신념을 지나치게 잃어버리면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된다. 은경의 경우 한유리를 통해서 잃어버렸던 초심을 되짚으며 토사구팽 당할 위기에서 살아남는다. 고용주의 요구에 맞서 자신만의 신념을 현명하게 지켜가는 것으로, 그녀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관계는 사회적 계약만으로 지속될 수 없다 : 결혼이라는 제도적 장치의 허술함에 대하여
차은경이 무슨 생각을 했던 간에, 은경이 가정에 소홀했던 것은 누가 보아도 사실로 보인다. 하지만, 은경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일도 없다. 누군가는 일을 통해서 강한 성취감을 느끼고, 자아를 실현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그의 삶에 높은 만족도를 준다면, 누가 그를 막아 설 수 있을까. 그리고 덧붙여, 대다수의 직장인 가장들이 그러하듯이, ‘힘들더라도 계속해서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는 경우들이 많다. 가정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그리고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선 별 수 없이 일정한 수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밸런스는 여전히 중요하다.
은경의 실수는 그저 밸런스를 놓친 데에 있었을 것이다. 따뜻한 밥 한 끼를 아이에게 해먹여보지 못한 사람이,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까? 선물도 택배로 보내는 사람,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자신의 일에만 쏟아부어야 하는 은경에게 아이와 가정을 신경쓸 여유는 많지 않았을 것 같다. 일주일 중 하루라도 가정에 온전히 시간과 정성을 쏟았다면, 관계가 그토록 허망하게 끝나진 않았을 것 같다. 결혼이라는 제도적 장치, 일종의 사회 계약은 그 자체로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시켜주지 못한다. 결혼은 그저 허상일 뿐이고, 관계의 온기는 다른 무엇보다 체온을 통해서 효과적으로 유지된다.
무너진 이후에도,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했던 것 : 신념
많은 부분에서 은경의 삶이 건강하지 못했음을, 그녀를 지지하는 삶의 기반이 그다지 건실한 것이 아니었음을 말했지만, 변호할 수 있는 부분은 많아 보인다. 여자 변호사이면서 그다지 탄탄한 지지기반도 없었던 차은경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분명 보통 이상의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게 노력했기에, 그녀는 회사를 떠나서도 홀로 서기를 할 수 있었다. 자기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이 맡은 일에 열정을 다했기에, 그녀는 치열한 한 경기를 끝내고 난 후에도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터전을 충분히 갖출 수 있었다. 아마 그녀가 어정쩡한 변호사였다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었을 것이고, 그녀의 새로운 출발을 도와줄 사람들도 없었을 것이다. 한편, 가정을 향한 그 마음도 분명 진심이었기에, 뒤늦게라도 재희를 위해 애쓰는 그녀의 노력이 재희에게 닿았을 것이고. 이렇듯, 비록 잠깐 무너졌지만, 자신의 순수한 신념을 되찾고 그것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으로 차은경에겐 다시 따뜻한 봄이 찾아 올 것이 분명해보인다.
그러니, 삶을 지지하는 기반은 다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타인의 평가와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노력을 쏟는 게 아니라, 온전히 자기 자신의 신념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은 무너지더라도 그 강한 신념으로 다시 일어 설 수 있다. 한국사회는 비교사회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상대평가가 아주 흔한 사회다. 인간이 사는 곳이 어디든 그러지 않겠느냐만, 한국에서 유독 상대평가가 두드러진다. 하지만 이런 상대평가는 상대가 사라지면 무의미해지고, 끝이 없다는 함정이 있다. 말그대로 상대평가에서는, 상대opponent도 상대적relative이고, 평가도 상대적relative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대평가의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잡고 살아가기 위해선, 자신만의 확 삶의 기준점이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기준점이란, 순수한 신념 속에 있을 것이다. 삶이 흔들리고 있음을 느끼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 길에 처음 발을 내딛었을 당시에 자신이 품고 있었던 순수한 신념 하나만을 떠올려보시기를 바란다. 그 신념이 이정표가 되어 당신에게 다음 길을 안내할 것이다.
- <굿 파트너>, SBS,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