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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안 Oct 27. 2024

이해(利害)를 넘어서, 나를 진정 이해(理解)하는 일

<웰컴투 삼달리>속 삼달에 대하여

개천에서 난 용이 되고 싶었던 소녀. 소녀는 자신의 꿈을 펼치기 어려운 외진 시골인 고향이, 그리고 고향의 이름을 그대로 갖다 붙여놓은 자신의 이름까지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녀는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했고, 고향을 떠나 자신의 오랜 이름을 숨기고 예명인 은혜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이 소녀는 후에 사진작가라는 꿈을 이뤘고, 뛰어난 능력으로 금세 인정 받아 말그대로 개천에서 난 용이 됐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웰컴투 삼달리> 속 조은혜다. 조은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 치열하게 앞만 보고 달렸고 그 앞에는 성공가도만이 펼쳐져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짧은 행복도 잠시였다. 앞만보고 달려온 조은혜는 앞이 막히자 멈춰서게 된다.



‘나’-은혜-를 잃어버리다

좋아하는 일 하나만을 보고 달렸던 사람, 조은혜. 그녀는 일만 하며 살아왔기에, 일이 사라진 일상에선 뭘 해야할지 스스로 답을 찾지 못한다. 술 한잔 같이 마시며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는 일상. 그런 은혜가 더이상 일을 하지 못하게 됐을 때, 은혜는 더이상 서울에 머무르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는 조은혜와 조삼달을 모호하지만, 분명하게 구분한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조삼달이란 인물은 제주에서 나고 자란 친근한 인물로 그려내고, 조은혜라는 인물은 서울에서 외롭게 꿈을 쫓아가는 혼자서 고고하게 빛나는 별과 같은 인물로 그려내어 두 사람을 분명하게 구분한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결국 삼달이 은혜로, 은혜가 다시 삼달로, 그리고 삼달이 다시 조은혜로 돌아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누군가에 의해 누명을 쓰고, 작가 활동에 급제동이 걸려버린 은혜. 그 급박한 순간에서 누구 한 명 나서서 은혜를 도와주지 않고, 은혜가 짊어진 의혹은 은혜의 침묵으로 곧 기정사실화가 되었다. 은혜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믿지 않는 시점에서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을 것이다. 자기 자신마저 자신을 믿을 수 없는 시점에서, 은혜는 조용히 고향으로 잠적한다. 그렇게 은혜가 떠나버린 고향에는 자신에게 구차한 해명을 요구하지 않고, 그저 말없이 자신의 결백을 믿어주는 친구들과 가족들이 있었다. 조은혜가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은 결국 조삼달이 사랑하는, 그리고 조삼달을 사랑했던 사람들이 보내는 마음에 있었다.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에서 조삼달이 회복되는 과정은 쉽게 와닿지 않았다. 고향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는 사람에겐 <웰컴투 삼달리>속 삼달의 모습이 잘 와닿지 않을 것이다.



어린 시절 품었던 순수한 바람을 되찾는 것만으로도.

조은혜가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를 사람들로부터 치료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은혜는, 아니 조삼달은 사진 찍는 일이 좋았고, 삼달은 그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서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었을 뿐이다. 즉, 삼달에겐 자신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세계를 사진으로 남기는 일이, 그저 그 사소한 일이 좋았던 것이다. 삼달에겐 사랑하는 사람들과 세계를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그 순수한 바람과 마음이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으로 번져 갔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치열하게 살아가다보면 그 시절의 순수한 마음은 쉽게 잊혀진다. 사진 작가가 되겠다는 꿈, 즉 개천에서 난 용이 되겠다는 꿈 하나만으로 치열하고 맹목적으로 달려온 조은혜에게, 그저 사랑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일상을 소중히, 그리고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다는 어린시절 조삼달의 순수한 바람은 천천히 잊혀져 갔을 것이다. 


은혜가 길을 잃은 것은,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도 있지만 자신이 달려온 순수한 이유이자 순수한 원점을 잃어버린 데에도 있다. 어떤 이해에서 비롯된 동기나, 악의적이고 모진 동기 부여는 생각보다 오래가지 못한다. 그것들은 마치 카페인처럼 순간적인 각성을 가능케하지만, 결과적으로 사람의 어떤 행동을 오랜 시간 이끌어 가기엔 지속성이 부족하다. 하지만, 순수한 바람은 그저 사람을 꾸준히 밀어내는 어떤 힘이 있다. 온갖 이해(利害)에서 비롯된 이유는 사람을 쉽게 탈진하게 만든다. 특히나, 이해의 힘으로도 더 이상 나갈 수 없는 상황, 삶의 한 가운데에서 길을 잃어버렸을 때에는 그 어떤 거창한 대의명분보다는 그저 오래전 자신이 그 일을 하게 된 결정적이고, 순수한 바람 하나만이 중요하다.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 각자 저마다 자신이 그곳에 서 있게 된 이유. 아주 오래되고, 빛 바랜 그 순수한 바람 하나를 생각해보면 다시 길을 찾아 갈 수 있으리라.


<웰컴투 삼달리>에서 자신의 원점을 되찾은 조삼달은 조은혜라는 예명을 더 이상 쓰지 않을 것이다. 조은혜라는 이름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순수한 어떤 시절과의 절연(截然)을 의미하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조삼달이라는 이름을 다시 쓰는 작가 조삼달은 자신의 꿈이 시작된 그 어떤 곳의 이름을 비로소 알게 되었고, 그 이름을 마음 깊은 곳에 품었기에 또 다시 자기 자신을 잃는 일을 만나진 않을 것이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 또한 지금 길을 잃었다고 느낀다면, 자신이 이곳에 서게 된 자신의 가장 순수한 바람 하나를 생각해보면 어지러운 이 길을 헤쳐나갈 이정표가 될 수 있으리라는 말씀을 덧붙여본다.

-<웰컴투 삼달리>, 2023,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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