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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안 Oct 27. 2024

어찌됐든, 아침은 반드시 온다.

<정신병원에도 아침이 와요>속 다은에 대하여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현대사회, 특히 우리 사회에서 마음이 병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 정다은의 시선을 따라가며 다양한 환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며, 치유의 과정을 그려간다. 그 아픔이 수많은 현대인들이 겪었을 아픔과 중첩되는 부분이 있다. 그렇기에 환자가 치료될 때, 비슷한 아픔을 공유한 청자 역시 환자와 같은 아픔을 갖고 있는 청자에게도 그 치유의 감각이 전해진다. 공개 후 좋은 평가를 많이 받고 있는 이 드라마의 매력은 바로 그 단단한 공감의 기반에서 싹 트는 치유의 힘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비슷한 경험을 제공하고, 비슷하게 호평을 받은 드라마 중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인데, 사실 우영우는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 비하면 완만하고 단순한 플롯을 채택한 편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조금씩 미쳐있는지도 모른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환자를 치료하는 치료자가 환자가 되어, 치료자의 시점에서 환자를 관찰하다가 문뜩 시점을 급선회하여 환자의 시점으로 환자의 삶의 내막을 관찰한다. 치료라는 서비스를 베풀던 사람이 치료라는 서비스를 받는 입장이 된다. 즉, 이 드라마의 후반부에 이르면 환자와 치료사의 입장이 역전되는데, 이렇듯 입장이 뒤바뀐 자리에서 ‘시선의 객관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이 드라마가 이런 시선의 객관화라는 작업을 통해서 얻는 효과와 메시지는 강렬하다. 이 드라마가 얻어내는 효과는 바로, 이 사회에선 누구든 미칠 수 있다는 것이고. 누구든 점점이 미쳐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점점이 미쳐갈 수 있다는 것. 또는 이미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미쳐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아픈 게 당연하다, 아플 수 밖에 없다.

현대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겪는 많은 아픔과 갈등이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 녹아 있다. 그리고, 이 드라마에는 마찬가지로 드라마틱한 희망 역시 녹아 있다. 살아가며 우린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아니, 애초에 현대사회는 소속된 작은 개인들이 미쳐버리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정도로 개인에게 과한 압력을 행사하고 모욕을 쏟아내고 있기도 하다. 그것이 이 사회가 개인을 동력으로 삼아 발전해가고 유지되는 방식이기도 하다. 우리 사피엔스들의 문명과 공동체는 언제나 그렇게 누군가의 희생위에서 번영했고, 발전했다. 어떤 물체가 앞으로 계속해서 전진하기 위해서 동력이 필수인 것처럼, 우리 종의 문명 또한 다양한 생명체들을 동력삼아 전진해왔다. 이 세계의 99%는 현대 문명이라는 기차를 움직이기 위해 연료통에 처박히는 연료와 같은 운명이다. 이런 사회를 살아가고 있으니, 개인은 아프지 않고 버틸 방도가 없다. 특히, 섬세한 감성과 예민한 지성을 지닌 이들이라면 이런 아픔에 더욱 고통스럽게 반응할 것이다. 아픈 사람들이 나약한 것이 아니다. 아픈 사람들이 부적응한 것이 아니다. 아픈 이들이 이상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가 아프다는 자각도 하지 못하고, 아파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 내밀한 다양한 아픔의 양상들을 드러낸다. 드라마라는 장르답게, 그 드러냄이 때로는 과장되어 있지만, 그 과장됨도 배우들의 깊은 연기로 진실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병을 드러내고 그 병을 치유하는 과정을 그려내는 것으로 같은 아픔을 겪고 있을 혹은 겪었을 청자를 향한 치유의 기능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특히 역할을 역전시켜 시선의 객관화를 이뤄내어 치유의 효과와 함께 극의 장력을 더욱 극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단순히 의미에만 초점을 맞춘 드라마가 아니라는 인상을 준다. 이미 공고한 시스템으로 굳혀진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아프지 않을 수는 없다. 도피할 곳이 없을지도 모른다. 아침은 오겠지만, 이 밤이 결코 순탄지 않을 수도 있다. 분명 이 밤이 끝나겠지만, 이 밤이 얼마나 길게 느껴질지 장담할 수도 없다. 하지만, 드라마의 제목처럼 아픔을 겪고 있을 많은 이들이 길고 긴 밤을 지나 아침을 맞이하길, 소망해본다. 밤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없듯이, 아침이 오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막을 수 없는 일이니까.

-<정신병원에도 아침이 와요>, 2023,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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