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상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던 중에 브런치를 통해 받은 제안. '강연 섭외'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매우 반갑고 기뻤다. 지난번 출간 제안을 받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연 제안이라니.
내용을 보니 '글쓰기 기본 교육' 강의 의뢰다. 주최하는 곳도 신뢰가 가고, 10월 10일, 17일 2주간 2시간씩 시간도 괜찮다. 아쉬운 부분이라면 화상 강의라는 점.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강의였다.
화상 강의가 어려워서가 아니다. 가까이에서 서로 얼굴 보고 목소리를 듣고 온몸으로 현장의 느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었다. 강의를 많이 해왔고, 그 현장의 맛을 알기에 코로나 상황이 더욱 안타까웠다.
10월 15일(목)이면 구로센터에서도 글쓰기 코칭 과정이 오픈된다. 시작 전 10월 8일(목)에 글쓰기 코칭 과정 안내 차 세미나를 열 계획이었다.
원래는 8월 중 오픈할 계획이었지만, 목감기와 코로나 2.5단계 격상으로 미뤄졌다.
그런데 때맞춰 글쓰기 강의 제안이 들어왔으니, 뭔가 아귀가 딱 들어맞는 기분이었다. 애초에 가을에 론칭이 목표였다가 8월로 앞당긴 것이었기에, 한편으론 추석을 지나 적절한 시기에 오픈이 결정된 게 잘 되었다 싶다.
강의 계획서와 이력서
담당자와 몇 번 메일을 주고받으며 구체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작성했다.
이력서를 쓰다 보니 내가 지나온 길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글쓰기와 심리상담을 위해 공부하고 투자했던 시간만 모아도 23년이다. 글쓰기를 위한 투자와 심리상담을 위한 투자 안에는 또 여러 가지의 공부가 있다. 드라마 공부도 했고, 독서모임도 운영해 봤다. 임상심리도 공부했고, 직접 심리센터를 운영하면서 강의와 상담 경험도 쌓았다. 그 외에도 심리 관련 자격증들을 땄으며, 지금도 NLP 트레이너로서의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 모든 시간을 모은다면 40년은 족히 될 것이다.
글쓰기 코칭 과정은, 그동안 공부하고 투자한 시간들을 모조리 모아서 만든 '엑기스'다.
지금까지 경험해온 나의 모든 것을 풀어놓을 기회!
이력서를 쓰는 동안, 가슴이 설레고 뭉클했다. 시원한 파도가 치는 듯도 하고, 따뜻한 바람이 숨결을 내뿜는 듯도 하였다. 이력서는 하얗게 펄럭이는 돛이 되어 나를 새파란 바다로 이끌었다. 험상궂게 나를 위협하던 바다가 아닌, 눈부신 태양이 내리쬐는 희망의 바다로.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 온다
나는 이 말을 전적으로 믿는다. 그동안 내겐 여러 번 행운이 왔고, 준비되지 않은 것들은 여지없이 놓쳤다. 행운이 마냥 달콤하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이를 악물고 지금까지 버텼다. 당당히 행운을 거머쥐는 준비된 자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운도 실력이다'라는말은 꽤 냉철하다.
브런치가 아니었다면 과연 글쓰기 코치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을까?
거의 매일 나의 이야기를 쓰지도 않았을 테고, 에세이의 매력이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밥 먹고, 다투고, 화해하고... 가족, 이웃, 사랑, 그 흔한 낱말들에 깊은 의미를 되새기지도 못했을 테지. 아침 햇살, 그 고요하고도 찬란한 빛의 경이로움과 세상 어느 곳의 맨발인 아이가 흘리는 눈물도, 해맑게 웃는 웃음소리도 몰랐을 테지. 사랑하고 이별하고 미워하고 그리워하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절박한지도 모른 채, 나 또한 욕망 덩어리인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겠지.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태어나는 브런치에서 나는 인간의 생동하는 삶을 보았다. 그래서일까. 브런치는 내게 엄마의 자궁처럼 따뜻하다. 태아처럼 먹고 싸는 편안한 곳. 이곳에서 쓰는 글은 전부 나의 생동하는 삶.
행운은 그렇게 내 삶에 다시 노크했다.
글이란 양날의 검
아들 낳던 날이 떠오른다. 정말 죽을 것 같던 산고였다. 몸이 갈가리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그렇게 아들을 낳았다.
글쓰기도 그렇다. 아이 낳는 고통을 겪으며 글을 낳는다. 고통 뒤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따른다. 그리고 얼마 못 가 다시 고통 속으로 뛰어든다. 고통도 감수하게 만드는 사랑의 기쁨. 그것이 바로 글쓰기다.
인간만이 글을 쓰고,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고자 하는 본능 때문이다. 그렇기에 글쓰기 치유가 가능하다.
살이 찢기는 고통을 겪으면서 엄마의 존재와 아기의 존재를 느끼듯, 글이란 인간의 존재를 느끼게 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이름 석 자가 주어진 그날부터 이름은 나라는 존재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단어가 된다. 이름에 덧붙여지는 '왕자와 거지', 또는 '아름다운 000', '멍청한 000'와 같은 수식어도 마찬가지다. 글이란 양날의 검처럼 위험한 매력을 지녔다.
글쓰기를 가르친다는 건 검을 잘 다루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과 같다. 자신에게 맞는 검을 고르고, 검을 올바로 잡는 법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검조차 들 수 없었던 무기력한 사람도 거뜬히 자신의 인생을 이기고 나갈 힘을 기를 수 있게.
내가 쓰는 글을 누군가가 읽고 있다면, 그 또한 가르침 못지않은 책임감이 뒤따를 터. 검을 쥔 자들의 숙명 같은 거다.
실패는 없다. 피드백만 있을 뿐이다.
이제 구체적인 강의 계획서만 보내면 된다. 통장 사본을 같이 보내 달라는 걸로 보아 이력서는 통과된 듯하여 포스팅도 하는 것이다. 최종 불발이 된다고 해도 포스팅은 했을 테지만. ㅎㅎ
꿈과 좌절 사이에서의 숱한 경험은 지금의 나를 만든 소중한 자원이었다. 성공했든 실패했든 상관없다. 지금의 실패는 다음 성공을 위한 피드백에 지나지 않다. 그저 매 순간 진솔하고 감사하며 사는 것이 행운을 불러오는 준비된 자세가 아닌가 한다.
세상을 향한 불평불만보다는 위트 있게 눈 한 번 찡긋 해주는 마음의 여유. 불필요한 감정 소모가 아닌 냉철한 사고. 유연함이야말로 작가가 가져야 할 필수 조건이다.
행운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오는가?
그렇지 않다. 미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자신감이 없어서, 어느 땐 그게 행운인지도 모르고 지나가버리는 무신경함 때문에, 우리는 무수한 행운의 순간을 놓쳤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