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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이조영 May 17. 2021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듭니다

세상의 소리에 반하다 1

창밖으로 빗소리가 조록조록 들린다. 토독, 톡,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인다. 깊은 밤, 빗방울이 수런대는 소리.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는 비의 언어.     




얼마 전부터 유튜브에서 빗소리와 뇌우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든다. 빗소리도 갖가지여서 바다, 숲, 공원, 처마, 슬레이트 지붕, 텐트, 오두막, 벽난로가 있는 집 등 소리마다 달라서 신기했다.

요란한 빗소리부터 잔잔한 빗소리까지. 나에게 맞는 주파수를 찾듯, 그렇게 한참 각종 빗소리를 찾아서 들었다. 

뇌우가 있을 때와 없을 때가 다르고, 타닥타닥 벽난로 소리가 있을 때와 없을 때가 다르다. 빗방울이 어디에 떨어지느냐에 따라 소리가 다르고, 빗줄기의 강도에 따라서도 소리가 다르다. 빗소리가 이토록 다양하다니 놀랍다. 

마음이 가장 편안할 때는 잔잔한 빗소리에 간간이 뇌우 소리가 들릴 때였다. 

언젠가 누군가가 물었다.


“뇌우 소리가 시끄러울 거 같은데. 잘 때 방해되지 않나요?”

“아니요. 뇌우 소리가 들리니까 잠이 더 잘 오더라구요."

"신기하네요."

"자기한테 맞는 소리가 있으니까요."


이어폰을 끼고 눈을 감으면 세상 소음이 사라지고 빗소리와 뇌우 소리만 들린다. 귀 가까이 들리니 실제 비가 내리는 착각에 빠진다. 비가 내리는데 포근한 침대에서 잠이 드는 게 안전하고 편안한 느낌이다. 비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집이 있다는 게 감사해진다. 빗소리 덕분에 감사함으로 하루를 마친다. 마치 빗소리로 감사 일기를 쓰는 기분이다.     

     



소리에 예민한 나는 자다가 자주 깨는 편이다. 다른 방의 문이 열리는 소리, 거실에서 강아지가 다니는 소리, 남편이 집에 오는 날이면 코 고는 소리와 뒤척이는 소리…….

선잠을 자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면 개운하지 않고 찌뿌듯하다. 소리에 대한 피로감 때문에 신경은 날카롭고 기분은 저조해진다.

내가 소리에 예민한 사람이란 걸 알기 전까지 원인이 외부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내게는 귀가 눈이었다. 소리로 이미지를 그리고 느끼는 사람이었다. 실제로 영상을 볼 때 장면으로만 봐서는 느낌이 약하다. 영상에 소리가 들어가면 느낌이 확 달라진다. 그동안 보기만 할 때와 듣기만 할 때의 차이가 심하다는 걸 숱하게 경험했다.     

그 때문일까. 지금은 세상의 소리가 좋아졌다. 좋아하는 빗소리가 더욱 정겨워졌고, 뇌우 소리가 무서운 게 아니라 우물에서 물을 퍼내느라 드르륵거리는 두레박 소리처럼 들린다.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는 게 아니라 세상이 하늘이라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내는 느낌이다.      




세상엔 다양한 삶이 존재하고 저마다 소리를 낸다. 나는 이렇게 살고 있노라고 말이다. 

창밖에 내리는 비도 창문을 톡톡 두드리며 말을 건다.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여봐. 네가 혼자가 아니란 걸 알게 될 거야. 자연 만물이 살아 있는 소리를 들어봐. 네게 말을 걸고 있잖니. 너도 너의 소리를 내보렴."


비는 세상의 소리를 전하러 온 요정처럼 내 마음을 두드리고 있다.

나는 오늘 하루 어떤 소리를 내며 살았을까. 누군가의 소리를 제대로 들었을까. 내 마음의 소리엔 귀 기울였을까…….

오늘도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든다. 세상이 살아 있음이 소음 같지 않길 바라며. 나의 하루가 무의미하지 않길 바라며. 오늘은 오늘의 소리를 내며 살았듯, 내일은 내일의 소리를 내며 살기를. 나만의 소리가 있는 사람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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