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전 부치기가 끝나면 할 일이 다 끝난 것처럼 느껴졌지만, 양이 적으니 얼마나 편한지.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전기 프라이팬에 전을 부치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그러신다.
"예전에는 전을 광주리로 몇 개씩 했어. 다 해놓으면 친척들이 와서 싹 가져가고. 수고했다고 돈 한 푼 주길 하나, 와서 돕길 하나. 어느 해는 학교 다녀온 조카가 와서 나 없는 새 광주리에 반을 다 먹어 치웠어. 좋은 걸로만 골라놨더니 하필 그걸 먹었어. 어른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먹으면 어쩌냐고 혼을 냈지."
"후후. 애들이니 뭘 알겠어요? 근데 어른들은 가져가는 게 당당하잖아요."
"그러게. 그땐 뭐 하러 그렇게나 많이 했는지..."
어머니 얘기를 들으면서 친정 엄마 생각이 났다. 맏며느리라는 이유로 친척들 먹을 음식을 하느라 명절 때마다 전 부치기는 내 몫이었다. 허리가 아프도록 잔뜩 해놓고 나면 친척들 손에 바리바리 싸서 보내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무슨 죄란 말인가.
이건 명절이 아니라 노동의 시간이었기에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도 명절이 끝나고 나면 뭔가 큰 일을 치른 기분이었다.
명절은 그간 못 만난 친척들과 만나 인사하고 즐겁게 지내라는 취지일 텐데. 여자들 등골 빠지게 하는 명절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한국의 뿌리 깊은 가부장적 제도는 지금도 남아 있다. 모두를 위한 명절이 아닌 남자를 위한 명절인 것이다. 현대가 아무리 발달했다고 해도 명절은 아직도 100%의 수혜는 입지 못했다. 인터넷과 배달이 발달했음에도 명절은 여전히 여자의 노동으로 남아 있으니 말이다.
명절의 가치?
모르겠다.
핸드폰으로 영상통화도 할 수 있는 시대다. 교통도 발달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시대에 살면서 명절을 따로 챙겨야 하는 이유가 뭔지 정말 모르겠다.
"휴우- 이번 추석도 잘 지나갔네. 수고했어, 마누라."
친정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남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도 고생했어."
이번 명절은 참 재밌었어, 라는 말이 아닌 게 씁쓸했다. 언제나 우린 모두가 즐거운 명절을 지낼 수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