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소재 빈곤은 삶의 빈곤이다.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글을 쓰라고 하면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호소하는 분이 많다.
“그동안 있었던 일 중에서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쓰세요.”
“그동안 있었던 일...? 기억나는 게 없는데요.”
세상에나!
몇십 년을 살아오면서 기억나는 게 없을 수가 있나?
어떤 삶을 살아오셨기에??
“어제 무슨 일 하셨어요?”
“특별한 거 없었죠. 사는 게 매일 똑같죠, 뭐.”
“설마요. 삼시세끼 흰밥에 김치만 먹어도 똑같은 시간에 같은 속도로 똑같은 모양의 김치를 똑같은 자세로 먹을 리 없잖아요.”
“그런 게 이야기 소재가 되나요?”
“그럼 어떤 소재로 쓰시려고요?”
“뭔가 이뤄놓은 거나 특별한 경험이 있어야 쓸 것도 있죠.”
“어제 특별한 거 없으셨다면서요?”
“네.”
“특별한 걸 쓰려면 특별한 일을 하셨어야죠. 내 삶이 특별할 게 없다면, 특별하지 않은 걸 쓰면 되고요.”
“그런 걸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그래서 P님이 사는 의미가 없는 거예요.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 한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뭐가 떠오르시나요?”
“음... 그냥 밥 먹고 화장실 갔다가 멍하니 소파에 앉아 있었던 것 밖에는...”
“밥은 누구랑 드셨어요?”
“혼자요.”
“무슨 반찬이랑 드셨어요?”
“엊그제 끓여두었던 김치찌개랑 냉장고에 있던 반찬이요.”
“어떤 반찬이었는데요?”
“뭐였더라? 아... 아침에 먹은 건데도 생각이 안 나네.”
“반찬 먹을 때 어떤 맛이었어요?”
“맛? 모르겠어요. 그냥 아무 느낌 없었는데...”
위의 이야기는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의 사연을 각색한 것이다.
사람들에게 글을 쓰라고 하면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함부터 느낀다. 일기조차 써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특별한 일을 쓸까.
그리고 특별한 일을 하지도 않으면서, 특별한 글을 쓰려고 하는 게 너무 답답하다.
글 = 특별하고 대단한 사람들만 쓰는 것
글이 나와 거리가 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상한 논리를 갖고 있다.
글이란 내 안의 경험을 쓰는 것이다. 그래야 진솔한 나만의 이야기가 된다.
요즘은 전문가의 시대가 아니다. 보통 사람들의 시대다. 보통 사람들의 경험과 가치가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성찰을 일으킨다.
소재가 고갈되었을 때
글을 쓰던 사람도 소재 고갈에 시달릴 때가 많다.
내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살펴보면 답은 나온다.
아무 느낌이 없는 하루.
내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 있어서 매 순간을 느낌 있고 임팩트 있게 산다면, 아무것도 아닌 일상도 다른 날과 다르게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깨닫는다.
“아! 내가 이 순간을 너무 무감각하게 지나쳤구나.”
삶은 우주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는 게 아니다. 내가 곧 우주이기에 내 삶에서 깨닫는 게 특별한 것이다.
그 특별함이 쌓이고 쌓이면, 그것은 대단한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은 아무 감각도 없이, 성찰의 순간을 놓치면서 살고 있다. 그들에겐 쓸 게 없는 게 아니라 생생한 삶이 없다.
P님에게 필요한 솔루션
“오늘 저녁부터 당장 나만의 만찬을 차리세요. 최고로 예쁜 그릇을 준비하세요. 제일 좋아하는 음식으로 하세요. 혼자 드시는 것도 좋지만, 같이 드실 분이 있으면 초대하세요. 음식을 드실 때 사진을 찍으세요. 이왕 먹는 거 소리가 나도 괜찮으니 맛있게 드세요. 그때 어떤 맛과 향이 느껴지는지, 또 그 외에 어떤 느낌인지 충분히 느껴 보세요. 그러고 나면 어떤 감정과 생각이 나실 거예요. 그게 뭔지 기억해 두세요. 기록하는 것도 좋아요. 주무시기 전 조용한 곳에서 식사 때 있었던 일을 쓰세요. 잘 쓰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쓰시면 돼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을 살아간다. 너무나 익숙해서 감각이 무뎌지고, 감각이 무뎌지면 삶은 생동감을 잃고 방황한다.
글은 나를 살아 있게 만드는 마법이다.
그냥 무심히 지나쳤던 일도 글로 쓰면 장면이 잘 그려지고, 실제 소리도 들리고, 그때 받았던 느낌도 생생하게 살아난다. 그 당시에는 몰랐던 감정과 새로운 성찰이 뒤늦게야 발견되기도 한다.
감각을 깨우면 나의 일상도 특별해진다. 특별한 사람이 특별한 일을 쓰는 건 쉽다. 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걸 특별하게 만드는 건 대단한 능력이다.
내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도 결국 나에게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