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모님은 염소를 키우신다.
10년 전쯤 새끼 염소 두 마리를 키우기 시작하셨고, 이제는 꽤 많은 염소를 낳아 소소하게나마 재미를 보고 계신다고 한다.
새끼 염소 한 마리가 15만 원이었는데, 지금은 20만 원이니 그동안 가격이 좀 올랐다.
시댁에 가서 염소 우리에 가보면, 외부사람을 엄청 경계한다.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멀찍이서 새끼 낳은 걸 보면서 신기해한다.
시어머니를 잘 따른다고 하니, 밥 챙겨주는 사람을 잘 따르는 건 어느 동물이든 같은가 보다.
남편과 훗날 시골에 내려가 살자고 얘기하면서 우리도 흑염소를 키우자고 했다. 우리 부부는 둘 다 농사와는 거리가 멀고 할 줄도 모른다. 시골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아니어서 처음엔 시골살이는 꿈도 안 꿨다.
하지만 요즘 도시살이가 지친다. 나처럼 프리랜서인 경우 매일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젠 좀 여유롭고 조용한 시골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고민 중이다.
1년 넘게는 시간 날 때마다 시골 여행을 다니면서 집을 알아볼 생각이다. 이번 주 연휴부터 당장 실천하자고 얘기했다.
그런 결심을 하게 된 이유가 있다.
8월 한 달(사실 이전부터 웹소설 준비하랴 코칭하랴 몸을 무리했더니) 코칭도 방학하고 웹소설 준비로 너무 무리했다.
추석을 보내며 피로가 가중되었던 모양이다. 명절이 끝나자마자 어지럼증과 함께 오십견에다 몸 이곳저곳에서 탈이 났다.
최근 신장암 1기 판정을 받으신 시어머니.
추석을 한 주 정도 남기고 수술을 하셔서 차례도 지내지 않았다. 대신 시누이 부부와 대청소로 대신했다.
그 이후에 남편과 통화하다가, 남편 차에 있던 시어머니가 대화를 들으셨다.
"아프면 빨리 병원엘 가야지. 놔두지 말고 얼른 가라."
전화 너머로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험을 아주 기본적인 것만 들어놓은 터라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번 기회에 더는 미루지 말자 하고는 보험 점검을 요청했고, 승인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느라 병원에도 가지 못하는 상태였다.
아픈 걸 견디려니 너무 고통스러운데, 다음날 시부모님이 흑염소를 해주신다며 전화가 왔다. 그 얘기를 듣자 마음이 뭉클했다.
농사를 짓느라 늘 힘들어하시던 시어머니.
그걸 알기에 뭐 하나 그냥 달란 말도 못 하는 며느리.
병 얻어가며 키운 흑염소를 해주신다는 말씀이 감사해서 전화를 끊고는 눈물을 훔쳤다.
건강원은 시부모님과 잘 아는 사이로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전화로 증상을 세세히 물어보고 만들어 보낸 흑염소 진액.
냉장고에 한 포 한 포 넣으며 시부모님을 위해 기도드렸다.
시아버지도 얼마 전 뇌출혈로 수술을 하셨기에 두 분의 건강이 걱정이다. 모쪼록 두 분 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그날 저녁 시어머니께 잘 받았다고 전화를 드렸다.
"감사해요, 엄마. 잘 먹을게요. 힘들게 키우신 건데 그냥 먹기 그래요. 돈 조금 부쳐 드리려구요."
"뭔 돈을 부친다니?"
"아니에요, 보내 드려야 제 마음이 편해요. 이젠 무리해서 일하지 마시구요."
"그래. 좀만 일해도 금방 피곤해서 못 하네."
"그동안 너무 몸을 혹사하셨어요. 농사 일도 하지 마세요."
"그래야지. 약 잘 챙겨 먹어라."
시부모님이 키우신 흑염소 먹고 나도 얼른 건강해야지.
요즘 딸내미도 몸이 안 좋아서 비실거리고 있다고 말했더니 남편이 시부모님께 말씀드리고 해 주겠단다.
"그냥 어떻게 해달라고 해? 돈 부쳐 드려야지."
"걱정 마. 딸내미 건 내가 해줄게."
여자 나이 마흔 전에 흑염소 세 마리를 먹으면 잔병치레가 없다는 말이 있다.
시골살이를 해야겠다 마음먹은 것도 나중에 자식들에게 해주고 싶어서다. 이렇게 또 부모님의 마음을 닮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