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삶 빼기 사(思)
<장경희님 이야기>
내 삶에 있어 가장 행복하고 기쁨을 만끽한 계절은 풍성함을 느끼게 하는 가을.
1994년 9월 15일.
온 세상이 부러울 게 없는 날이었다.
기쁨의 눈물 반, 그동안 애쓰며 힘들어했던 속상함과 긴장감에 대한 눈물 반.
병원에서 불임이라는 결과가 나와 한없이 남몰래 흐느껴 울었던 많은 날들이 영화관 필름처럼 착착착, 컷컷컷 스쳐 지나간다.
그동안 4년이라는 세월을 순간에 잊게 해 준 큰아들이 태어난, 날씨가 무척 더운 초가을이었다.
아들이 태어나 업고 다니는 나를 보면, 내 일처럼 안타까워해 주시던 동네 어르신들이 감사해서 아이가 열 살이 될 때까지 생일날은 백설기 떡을 해서 나눠 먹었다.
그렇게 해야 내 마음이 편안한 것 같아서 나 편하자고 해 왔던 것이다.
어느새 세월이 흘러 29살 어른이 되어버린 아들.
생일날이 다가오면 미역국, 불고기, 갈비, 잡채, 떡, 케이크….
작은 것이지만 좋아하는 것들로 정성을 담아 차려서 가족이 함께 했다.
좋아하는지 묻지도 않고 당연히 해줘야 하는 줄 알았다.
몸이 아파 아무리 힘이 들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소고기 미역국은 아침에 한 숟가락이라도 떠먹여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NLP를 배우고 내가 변했다.
아들의 생일상이 아니고 수고한 나를 위해 비싼 한우를 사다가 끓여먹고 싶어졌다.
부드러운 양지 반 근을 사고, 불고기거리 한 근, 버섯, 빨갛고 노란 파프리카, 잡채거리를 사 와서 돌아오는데 마냥 즐거웠다.
나만을 위해 물건을 사 본 적이 처음이라 살짝 설레기까지 했다.
가족들이 집에 오기 전에 멋지게 차려놓고 혼자 먹고 싶어서 룰루랄라 콧노래까지 부르며 음식을 완성했다.
고기도 큼직하게, 국물은 짜박짜박 적당히 졸이듯이 진하게 끓여 식탁에 놓았다.
많은 것을 차리지는 않았지만, 불고기와 잡채를 예쁜 사기그릇에 담아 놓고 식탁에 혼자 앉아 중얼거렸다.
“경희야, 그동안 수고했어. 이제는 너, 너, 너 자신을 사랑해 줘라. 지금까지도 잘하고 살았지만, 인생은 60부터라잖아. 즐기며 살아. 가족이 우선이 아닌 경희 네가 우선이었으면 좋겠어.”
말을 하고 나니 잘한 것 같고, 내가 최고인 것 같아 아무 생각 없이 한동안 멍하니 음식만 바라봤다.
식은 미역국을 다시 데워 뜨거운 국물을 후루룩후루룩 소리 내며 먹었다.
하얀 햅쌀로 한 밥을 잡채와 곁들여 한 공기 맛나게 먹으며 나는 울고 있었다.
그동안 나의 수고를 인정해 주지 않고 소중한 대접을 받지 못한 거 같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눈물, 콧물 범벅이 돼 화장지론 감당이 되지 않았다.
욕실에서 수건을 가지고 와 엉엉 흐느껴 우는 내 모습이 궁상맞아 살짝 짜증이 올라왔다.
“상상이라도 해 본 적이 없는 일을 했으면 기뻐야지?”
“통쾌해해야지?”
나 자신에게 반문하고 있었다.
“그래서 늘 발전이 없는 거야.”
“성장해야지. 이제는 강해져 봐.”
“네가 행복해야 가족도 행복한 거야.”
묻고 대답하며 정신이 바짝 들었다.
내일은 퇴근하며 노오란 국화꽃을 사다가, 가을 향기가 집안 가득하도록 식탁에 놓아야겠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전환되었다.
삐삐삐.
아들이 퇴근하여 집에 왔다.
“아들~ 생일 축하해!”
흰 봉투에 십만 원을 담아 주었다.
“맛난 거 사 먹어. 올해부터 우리 집에는 생일 없어. 아들들 생일에는 엄마를 위해서 보낼 거야. 서운해하지 마.”
그러자 아들이 말했다.
“이렇게 변한 엄마가 좋아요. 엄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세요. 제가 응원할게요. 이 마음 변하지 않기를 바라요. 저 낳아 주셔서 감사해요. 사랑해요, 엄마.”
많이 표현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차려준 밥상에 감사하는 아들을 보니 흐뭇했다.
나의 감정을 말하지 않고 알아주기만을 기다리며 왜곡하고 서운해했던 많은 시간들에 가슴이 시린다.
이제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고,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나에게 또 다른 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서 좋고,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무엇이 소중한지 묻는 좋은 습관이 내 몸에 젖어 들어 장착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