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자 이조영 Oct 24. 2022

칼칼닭면과 딸

제3장 삶 빼기 사(思)

<유우정님 이야기>


햇살에 붉은 단풍잎이 반짝반짝 빛을 내던 어느 오후.
교회에서 성경 공부를 마치고 오는 딸과 만나 마트에서 장을 보기로 했다.
딸이 시식 코너에서 새로 나온 칼칼닭면을 먹어보더니 맛있다며 사자고 했다. 포장지는 새빨간 색으로 무척 매워 보였다. 특히 붉은 다대기 양념이 듬뿍 들어간 그림이 보기만 해도 땀이  정도였다.

집에 돌아와 딸은 라면을 끓여서 같이 먹자고 했다. 남편과 나는 매운    먹는다.
 혼자 먹어.”
같이 먹어야 맛있지.”
딸은 아빠 몫까지  개를 끓였다.
남편은  먹고 나서 딸한테 속았다며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닦고 얼음물로 입을 달랬다. 그러면서도 껄껄 웃으며 딸과 장난치는 모습이 너무 웃겨 가벼운 마음으로 한마디 던졌다.
  듣지 . 보면  몰라? 매워 보이잖어.”
그러자 별안간 딸의 안색이 굳어지며 표정이 차갑게 변한다. 방금까지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딸의 눈치를 보며 긴장하고 있는데, 남편은 아무것도 모른  씻는다며 나가버렸다.
엄마 기분 나빠.  아빠한테   듣지 말라고 하는 거야?”
딸이  쏘아붙이고는 자기 방으로 가버렸다.  
나는  딸의 상처를 건드린 것에 몹시 당황했다.

 씻고 들어온 남편에게 딸과 있었던 이야기를 하자,  듣고  남편이  방에 가서 뭐라고 말했는지 ”괜찮아. 내가  달랬어.” 하며 웃었다.
알았어. 이제 나도  말조심하고, 미안하다고 해야겠어.”
방문 틈으로 보니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딸이 빙그레 웃으며 들어온다.
 미안해. 엄마 말에 기분 상했으면 사과할게.”
나는 딸을 꼬옥 안아 주었다.
알아차리고도  딸이 일어나 나갈 때까지 감정을 만져주지 못했는지.  템포 느린  대처가 실망스러웠다. 이런 어정쩡한 대응이 딸과의 관계를 틀어지게 하고  도돌이표가 되게 한다.

예전에 남편과 셋이 한강에  적이 있었는데, 그때 딸이 편의점에서 너구리를 골라 끓여먹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남편이 “  듣지 말걸. 맛이 별로 없어.” 하면서 후회했다는 것이다.  
  듣지 . 이제는 당신이 먹고 싶은  먹으라고.    자꾸 들어?”
 말에 딸은 무척 기분이 나빴었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말을 하자 감정이 북받쳤단다.
알았어. 다시는 그런   할게.”
딸은 어릴 때부터 “ ”, “하지 .”라는 말을 죽도록 싫어했었다.
그러나 입버릇이 되어버린 나는 딸의 행동과 말을 부정하고 억압하려 들었다. 조그만 일에도 부정의 언어를 들이대면 딸의 트라우마가 발동이 걸려 자지러지는  몰랐다.
딸의 기를 살려주고 칭찬과 인정으로 지지해주고 긍정의 언어로 자존감을 높여주지 못한  미안했다.

이제는 딸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대화를 나누며 기분을 살필  알게 되었다. 소리에 예민해 짜증을  내는 것도 알게 되었다.
소통 부재로 고통을 겪었던 우리 가족이 회복할  있었던  ‘관찰 ‘경청덕분이다.  보고  듣는 사람이 되기 위해 했던 노력이 서서히 빛을 발해  생각과 감정으로  빠져드는  줄었다. 실수를 하게 되더라도 금방 돌이킬  아는 지혜도 생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