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삶 빼기 사(死)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때 얼마나 관찰을 하시나요?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더 많지 않으세요?
귀는 열어놓고 있지만, 사실 듣고 있는 게 아니지요.
그러다 보니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 말을 꺼내서 가로막거나, 제 생각을 주장합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내 생각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닌데 말이에요.
소통에 있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상대가 어떤 필터와 패턴으로 움직이는지 그 알고리즘을 아는 겁니다.
필터와 패턴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로 인해 각자의 생각과 언어 세계가 달라지는 거니까요.
그 고유의 알고리즘을 알게 해주는 것이 바로 ‘관찰’과 ‘경청’입니다.
내가 얼마나 관찰을 잘하고 경청을 잘하는지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한 번 테스트해 볼까요?
상대의 표정, 자세, 제스처, 얼굴의 밝기, 움직임 등을 유심히 살펴봅니다.
그때 그 사람의 큰 변화가 느껴지는 순간이 있을 겁니다. 그건 곧 내면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힌트입니다. 그 변화의 폭이 클수록 감정과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때는 넘겨짚지 말고 질문을 하면 됩니다.
“방금 인상을 찡그리시던데, 무엇 때문인가요?”
또는,
“방금 다리를 바꿔서 앉으시던데, 그때 내면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무의식 중에 한 행동이라 아마도 상대는 의식하지 못했을 겁니다. 질문을 받고 나면 곰곰이 자신의 내면을 들어보겠지요.
“잘 모르겠는데요.”, “글쎄요.”
이런 대답이 나오면 구체적인 질문으로 들어갑니다.
“인상을 찡그리실 때 무슨 장면이 떠올랐어요?”
“소리도 들렸나요?”
“그때 느낌은 어떠셨어요?”
“감정은요?”
하나씩 질문하는 동안, 상대는 자신의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하나의 형상을 찾아갑니다.
그러면 무의식 중에 있던 감정을 의식적으로 끌어내어 볼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핵심은 상대로 하여금 제 마음을 보게 만들어 주는 역할이 바로 '나'입니다. 상대가 보는 그 마음을 나도 보면서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공감’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이미 관찰에서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만큼 상대에게 관심을 두기보다 제 생각이 더 중요하니까요.
내 생각이 상대의 마음을 앞서거나 방해가 되면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경청할 때도 마찬가집니다. 온전히 내 생각을 빼고 듣기에만 집중해 보세요.
굉장히 힘들 겁니다. 왜냐하면 내 머릿속에서 자동적으로 돌아가는 생각들로 꽉 차게 될 테니까요. 생각이 듣는 습관을 방해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듣기에만 집중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내용에 집중하지 말고, 상대의 목소리 톤, 높낮이, 장단, 빠르기 등 원초적인 소리에 집중하는 겁니다. 그러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소리의 세계를 알게 됩니다.
우리는 언어의 내용에 집중하고, 또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전혀요. 소통할 때 먼저 영향을 받는 건 내용이 아니라 청각입니다.
같은 말이라도 크게 말하느냐 작게 말하느냐, 또는 부드럽게 말하느냐 거칠게 말하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는 게 달라집니다.
지금까지 이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고요?
그렇다면 상대를 관찰하지 않고 경청하지도 않았으며, 제 생각에 빠져 있었다는 걸 알아채셨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