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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이조영 Oct 24. 2022

나는 화산 덩어리

제3장 삶 빼기 사(思)

<임경복님 이야기>

매일 쳇바퀴 돌아가듯 반복되는 날이 무료하기도 하고 남편의 정년이 얼마 남지 않기도 해, 인터넷을 한참 뒤져 무박 여행지를 찾았다.  
“여보~ 우리 여행이나 한번 가볼까? 남해 어때? 돌아오는 주말, 10월 14일, 수원 성균관역에서 밤 11시 50분에 출발한대.”
남편에게 사진에 나와 있는 전경들을 보여주었다.
남해 금산 보리암 일출, 기암괴석들로 뒤덮인 38경, 분지처럼 주변 산들에 둘러싸인 상주 은모래 비치, 층층이 계단 모양의 땅에 농사짓는 가천 다랭이 마을, 뾰족한 주황색 지붕의 인형 집 같은 독일마을.
새벽 5시에 도착해서 창선 삼천포대교를 거쳐 맛있는 남해 멸치쌈밥 먹고, 오후 2시에 출발해 저녁 6시 수원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어때? 우리도 한번 가보자. 이쁜 곳이 참 많네.”
“그런 게 있었어?” 하더니 남편은 홀리듯 순식간에 결재를 해버렸다.
내가 앞장서서 장소, 시간, 날짜 등을 구체적으로 찾아 남편에게 말해본 적이 처음이다. 관광버스 타는 것도 생소하지만 무엇보다 남편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30여 년 결혼생활 내내 여행 한번 제대로 해 본 적 없이 장거리 여행이래야 명절, 생신, 한여름 삼복더위에 시아버님 추도예배드리러 시댁에 가는 게 유일한 휴가였다.
시댁에 내려갈 때는 내가 큰소리로, 집으로 올라갈 땐 남편이 험상궂은 얼굴로 급브레이크를 밟아 열받은 감정을 해소한다. 나는 하나도 안 놀라는 척 아랫배에 잔뜩 힘을 주고 엉덩이는 좌석에 착 붙여 앞으로 밀려나지 않게 자동차 손잡이를 꽉 잡는다.
남편은 에너지가 적어 매주 집에서 쉬어야만 하는 사람이라 아이들 어릴 때 여행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었다. 그런데 오지에 있는 자기 집에는 꼬박꼬박 가니 화가 치밀 수밖에.
‘내가 말 안 해도 아이들 어릴 때 일주일에 한 번씩은 가족이 놀러 가고 해야지. 그래야 아이들과 추억이 남는 거 아냐? 방학 때나 여름에는 피서도 가고,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알아서 좀 가야 하는 거 아냐? 꼭 어딜 가고 싶다고 얘기해야 아나?’  
내가 알아서 찾아볼 생각은 안 하고, 제대로 표현하지도 않은 채 남편이 알아서 해 주기를 바라는 생각만 머리 터지게 했다.
내 의사를 표현하지 못한 감정 덩어리가 시댁 갈 때마다 봇물처럼 터져 나와, 나 때문에 온 가족이 힘들었다. 대부분의 인간관계 역시 그때그때 말하지 않고 모아놓은 감정을 한꺼번에 화산 폭발하듯 해버렸다.

남해 여행을 주도적으로 세워 보니 인터넷에 다 나와 있어 세상 편하고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동안 아무 죄 없는 남편만 생각 속에 가둬둔 감정으로 죽였다 살렸다를 반복한 세월이 안타깝고 미안하다.
이제는 상대방에게 관심을 갖고 관찰해 그의 생각과 의도를 인지해 수용하려 한다. 내 감정도 조곤조곤 표현하면서 나를 방치하지 않고 사랑하면서 배려한다.
소통하는 법을 몰라 힘들었던 나는 성숙한 60대 청년으로 가는 길목에서 오늘도 배움을 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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