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자 이조영 Oct 24. 2022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제2장 언어 감옥

남편에게 중요한 얘기를 해야 할 때면 말을 하기에 앞서 분위기 좋은 카페나 장소를 찾습니다. 남편은 보이는 것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니까요.

남편의 흡족해하는 표정과 의자에 편히 기댄 자세를 보면,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하면서 차츰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냅니다.

이전엔 할 말부터 해버렸다면 지금은 남편이 편안할 때까지 기다리는 거지요. 남의 눈치를 본다고 생각해서 상대의 반응엔 상관하지 않던 나는 배려라는 걸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이야기를 꺼내면 뜻밖에도 남편은 진지하게 대화에 임합니다. 평소엔 잘 볼 수 없었던 모습이기에 남편이 새롭게 느껴집니다.

보는 게 약한 나의 이야기 스타일은 주로 설명식이었습니다. 듣는 게 약한 남편에게 설명은 쥐약이었던 셈이지요. 그런 사람에게 자꾸 주입식 이야기를 해댔으니 얼마나 고역이었을까요.

그걸 알기에 나는 남편의 보는 감각에 맞춰서 말하고 행동하려 애씁니다. 그런데 오히려 편해진 건, 납니다. 내 방식을 고집하지 않으니 가벼워진 거지요.

보는 방식에 맞추니 보는 감각도 점점 발달하는 느낌입니다. 먼저 장면을 그리고, 그다음에 말하는 게 남편과 소통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남편은 말을 잘 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야기가 생생하고 재밌습니다.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상을 띄우거나 보는 그대로 얘기하니 살아 있는 표현이 되는 거지요.

그래서인지 어딜 가도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고 인기가 많습니다.

그런데 클라이언트 중에는 저처럼 상이 떠오르지 않아서 관념적인 언어를 쓰거나 언어에 취약해 표현조차  못하는 분이 많습니다. 관념적인 언어를 쓰면  지적이고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상적인 소통의 언어가 아니어서 편하게 대화하기는 렵습니다. 말할 때마다 설명식이 되니 재미도 없을 뿐더러 선생님 같은 인상을 주어서 마음이 편치 않은 겁니다.

언어에 취약한 분도 소통에 애로가 많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앞뒤 잘라먹고  감정만  던져서 상대로 하여금 당황하게 만듭니다. 표현력이 달리니 같은 문장을 계속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분도 계십니다. 이런 분과 대화하면 혼란스럽고 답답한 데다, 본인 스스로도 답답하니 자꾸 감정이 앞서서 듣는 입장에선 부담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 모든 게 상이 떠오르지 않아 생기는 현상입니다. 보이는 대로 이야기하면 직관적이기에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편해집니다. 듣는 동안 무슨 말인지 몰라서 헷갈리거나 자기 해석으로 왜곡하는 게 적어지지요.


소통에 있어서 상대의 언어 세계를 아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그 언어 세계가 스스로에겐 감옥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유념에 두어야 합니다.

한국인인 내가 미국인인 남편에게 나 편하자고 한국어를 쓰라며 생떼를 써서야 되겠어요?

언어는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겁니다.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선 언어 감옥에서 나와, 상대의 언어를 배우는 게 먼저입니다.

이전 10화 스승님으로 모시겠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