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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이조영 Oct 24. 2022

제가 못 본다고요?

제2장 언어 감옥


“조영님은 듣는 감각이 발달하셨군요.”

처음 듣는 얘기에 어안이 벙벙합니다.

“제가요?”

“예. 보는 감각이랑 몸으로 느끼는 건 약하시고요.”

이건 또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일까요.

‘지금 보고 있는 건 뭔데? 느낌은 또 뭐고?’

몸의 감각을 느껴보려고 하지만.

‘아무 느낌이 없네.’

그때 처음으로 내 몸이 죽은 나무토막 같단 걸 알았습니다.

‘이래서 아픈 것도 잘 못 느끼나? 근데 보는 건…… 아!’

지독한 길치에다 물건 찾는 거라면 젬병인 게 떠올랐어요.

“조영님은 말씀을 참 잘하세요. 듣는 감각이 발달한 사람들이 그렇거든요.”

우여곡절 끝에 찾아온 센터에서 코치님에게 들은 말은 충격이었습니다. 반면, 남편은 저와 달리 보는 감각이 발달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남편과 그토록 안 맞았던 게 발달한 감각이 달라서라는 걸 알자, 어쩌면 소통의 실마리를 NLP에서 찾을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후로 시작한 NLP 훈련은 정말 신세계였습니다.

보는 감각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한 건 저였습니다. 보긴 보되, 디테일이 떨어지니 건성으로 보게 되는 거지요.

‘와, 그동안 뭘 보고 살았던 거야?’  

‘이래서 무슨 소설을 쓴다고 했을까?’

‘아, 말할 때 장면이 안 그려지니 자꾸 설명식이 되는 거였구나.’

듣는 감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소리에 예민한 줄도 모르고 있었어요.

‘나도 표정보다 말투로 판단할 때 많았는데.’

‘같은 말 반복하게 하는 거 진짜 싫어하고.’

‘맞아.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 순대로 이야기해야 편하지. 중간에 자꾸 끼어들면 헷갈리고.’

어느 감각이 발달했느냐에 따라 취향도 다르고 가치도 다르니 남편이 조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보는 방식에 대해선 여전히 오리무중이었어요. 내가 쓰지 않는 방식이니 당연히 모를 수밖에요.


훈련 초반에는 보는 감각을 키우기 위해 많이 노력했습니다. 길을 갈 때 주변을 잘 살피지 않는 습관부터 바꿨어요. 하늘도 보고 사람도 보고 건물 모양이 어떤지도 보았지요.

그해 봄, 길을 가다가 아파트 단지 담벼락에 장미꽃이 만발해 있는 걸 보았습니다. 꽃이라곤 관심도 없었는데 일부러 사진을 찍고 감상을 남겼어요. 새파란 하늘과 붉은 장미의 향기가 진동하는 골목길을 보자 문득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제대로 보지 못해서 얼마나 많은 찰나를 놓치고 살았을까요?

남편이 왜 그렇게 영화를 좋아하는지, 아들의 표정이 어떤지, 딸이 무슨 옷을 입었는지…… 조금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해 세상을 3분의 1만 알고 살면서도, 그게 전부인 양 잘난 척했던 게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어요. 감각을 배우고 익혀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답답함이 커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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