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자 이조영 Oct 24. 2022

로또 부부

제2장 언어 감옥

남편은 태블릿으로 영화 보는 게 취미입니다. 몇 시간이고 줄기차게 영화를 봅니다. 숙소에서도 보는 영화, 오랜만에 집에 와서도 보는 게 참 이해가 안 갑니다.

“또 영화 봐? 안 지겨워?”

“아니. 재밌는데.”

말 거는 게 무색하게 남편의 시선은 영화에 꽂혀 있습니다.

‘영화 보러 집에 왔나.’

불만 가득한 얼굴로 슬쩍 또 말을 붙입니다.

“추천할 영화 없어?”

“몰라.”

“영화 많이 보잖아. 자기가 보고 재밌는 거 뭐 없었어?”

남편은 한참 생각하다가 내용을 이야기해 줍니다. 하지만 연결이 잘 안 돼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제목이 뭐야? 내가 찾아볼게.”

“제목? 모르겠는데.”

“감독은?”

“몰라.”

“배우는?”

“몰라. 그런 거 신경 안 써.”

‘그래도 제목, 감독, 배우, 셋 중에 하나는 알고 보지 않나?’

정말 연구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아- 그럼 무슨 재미로 봐?”

“그냥 보는 재미지 뭐. 영화 보는데 뭘 심각하게 봐?”

“책은 안 봐? 제목도 모르고 감독, 배우도 모르는데 뭐가 남는다고 영화만 봐?”

책을 보면 도움이 될까 싶어 넌지시 권해 보지만.

“뭐가 꼭 남아야 해? 책은 진짜 나랑 안 맞아. 난 영화 보는 게 좋아.”

남편이 한없이 단순하고 가볍게만 보여 실망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남편과 사회, 문화,  얘기를 진지하게 나눈다는 사람들을  때마다 얼마나 부러운지 모를 거예요. 깊이 있는 얘기, 진지한 얘기남편과 나눠본 기억이 없습니다.

밝고 재밌고 사람들에게 잘하고.

연애할 땐 나에게 없는 면을 좋아했지만, 막상 부부가 되고 보니 그 ‘다름’이 망조였단 걸 깨달았지요.


소리는 왜 그리 크게 틀어놓는지.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나는 꽝꽝 울려대는 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메슥거립니다.

“소리 좀 줄여. 안 시끄러워?”

침대에 엎드려 영화를 보던 남편은 소리를 홱 죽이고는 일어나 밖으로 나갑니다.

“어디 가?”

“차에서 보고 올게.”

방에 덩그러니 혼자 남은 나는 모처럼 집에 온 남편을 차로 내쫓는 악처가 되고 맙니다.

같이 있어도 남편은 TV나 영화를 보고 있고, 나는 방에서 책을 보고 있으니 이래서 무슨 대화가 될까요?

안 맞아도 이렇게 안 맞을 수가 없어요.




서로 취향이 다르니 대화는 점점 줄어들고 부부관계는 점점 피상적이 되어갑니다. 부부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도 날이 갈수록 깊어갑니다.

결혼생활이 길어질수록 초반에 했던 싸움은 잦아들었으나, 근원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싸우기 싫어서 참고 있을 뿐이지요.

‘참는 게 능사는 아닌데 언제까지 이렇게 살까?’

‘우린 부부가 맞는 걸까?’

‘이렇게 살 바엔 그냥 이혼하는 게 서로에게 좋지 않을까?’

이젠 선명하기도 하련만, 부부의 형체는 여전히 흐릿하기만 합니다.

이전 07화 보는 남편 vs 듣는 아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