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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자 이조영 Oct 24. 2022

보는 남편 vs 듣는 아내

제2장 언어 감옥

어느 날, 남편이 고백합니다.

“나, 당신 때문에 심리상담받으려고 했었어. 그땐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더라고.”

“헉! 진짜?”

어렵게 재혼해 1년 동안 치열하게 싸웠던 우리 부부.

사사건건 부딪히는 일들이 많았고, 서로 다 맞춰주기엔 한계가 있었습니다. 남편에 대한 실망이 커지며 괜히 재혼했나 하는 후회로 우울감이 잦아졌습니다.

‘한 번 실패도 고통스러웠는데, 또 실패하면 어떡하지?’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야 할 가정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부부의 다툼은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어요. 아이들이 불안해하는 게 느껴져 엄마로서 죄의식도 강해졌지요.

‘나는 아내 자격도, 엄마 자격도 없는 사람인가 봐.’

바닥으로 떨어진 자존감은 정체성에 혼란이 왔고 우울감으로 멍하니 아파트 창밖을 보고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예전에 이혼으로 우울증이 왔던 때가 떠올라, 그 끔찍한 기억에 몸서리가 쳐졌습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할 순 없다는 간절함은 저를 심리상담 공부로 이끌었어요. 그런데 남편이 심리상담을 받아야 할 만큼 심각했을 거라곤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부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보는 남편 vs 듣는 아내


“식사하세요!”

주말부부인 우리는 기껏해야 한 달에 두 번 만납니다. 금요일부터 장을 봐서 수선을 피운 끝에 준비한 저녁 상.

나도 모르게 식탁을 휘 둘러보는 남편의 표정을 살핍니다. 남편의 젓가락질을 따라가던 나는 기어코 한마디 묻습니다.

“국은 왜 안 먹어?”

“비주얼이 별로야.”

‘별로라고? 말을 저렇게 밖에 못 하나? 내가 요리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부아가 치밀어 오르지만, 꾹 참고 좋게 얘기합니다.

“사람 성의를 봐서 그냥 좀 먹으면 안 돼?”

“안 먹어.”

국그릇을 옆으로 쓱 밀어놓는 남편이 얄밉습니다.

“애야? 왜 편식을 해?”

“나 원래 보기에 이상하면 안 먹잖아.”

그놈의 비주얼!

‘연애할 때 식당에서나 하던 짓을 왜 나한테 하지? 내가 식당 아줌마야 뭐야?’

안 보이는 성의보다 보이는 비주얼이 더 중요하다니. 그럴 거면 집에서 밥을 왜 먹나요? 비주얼 좋은 식당에서 사 먹으면, 나도 편하지요.

‘내가 요리에 자신 없어하고 하기도 싫어하는 이유가 다 있다니까.’

서운하고 섭섭한 감정이 끓어오르며 집 밥 해주고 싶은 마음이 쏙 들어갑니다.

그래도 사람 마음이 억하심정으로만 할 게 아니라서 어느 날은 비주얼에 신경 써서 만들어 줍니다. 기분이 한껏 좋아진 남편은 싱글벙글, 업 된 목소리로 말해요.

“오~ 오늘은 신경 좀 썼는데? 수고했어, 마누라.”

“…….”

남편 앞에서 요리 평가받는 기분 아시나요?

나는 어쩌다 남편 기분이나 맞추는 사람이 됐을까요?

자존감이 지하 100층까지 추락하는 기분입니다.




“지금 바빠?”

“아니.”

소파에 비스듬히 드러누워 핸드폰 게임을 하며 무심히 대답하는 남편. 옆에 앉아 그동안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 나.

그러나 게임 삼매경에 빠진 남편은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습니다. 듣고 있는 건지 마는 건지 대꾸하는 목소리도 시원찮아요. 주절주절 나 혼자 떠들고 있는 느낌입니다.

‘나, 누구랑 얘기하니?’

그냥 들어가 버릴까 하다가, 또 꾹 참고 얘기합니다.

“사람이 얘기하면 좀 쳐다봐.”

“듣고 있어. 얘기해.”

건성으로 대꾸하는데 짜증이 확 납니다.

자주 못 보니 오붓하게 대화라도 하고 싶은데, 남편은 나와 얘기하는 것보단 TV 또는 영화를 보거나 핸드폰 게임하는 게 더 좋은가 봅니다. 매일 통화할 때마다 ‘나 얼마나 보고 싶어?’라고 묻지를 말던가요.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는 남편에 대한 믿음 또한 저 지하 100층에 떨어진 내 자존감만큼이나 하찮게 느껴집니다.

“게임 끝나면 얘기해.”

남편은 내가 소파에서 일어나서야 핸드폰을 내려놓습니다.

“뭔데? 얘기해.”

그러나 이미 얘기하고픈 마음은 사라지고 좌절감만 남아 있을 뿐이에요. 우리 부부는 영원히 평행선, 흔해빠진 교집합 하나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결혼에 회의감이 몰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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