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자 이조영 Oct 24. 2022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제1장 생각 감옥

불면증은 나를 더욱 괴롭혔습니다. 몸은 피곤한데 정신은 또렷했습니다. 잠을 자려고 들면 들수록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느낌이었어요.

창고처럼 쓰던 작은방으로 와 아이들이 깰까 소리 없이 울었습니다. 초라한 내 모습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낮에 나보다 더 볼품없는 여자가 제 차를 몰고 가는 걸 보거나 일하는 가게에서 하대하며 깔보는 손님을 대한 날은 자존심이 상해 견딜 수 없었습니다.

‘내 인생이 어쩌다 이 꼴이 됐을까.’

대학시절만 해도 반짝반짝 빛나던 나는 결혼이라는 감옥에서 이혼이라는 지옥으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 세상이 감옥이고 지옥이야!’


잠을 이룰 수 없는 밤. 낮에 있었던 일들을 다시 떠올리며 ‘내가 그때 왜 그랬지?’로 시작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유를 갖다 붙였습니다. 길고 긴 꼬리 끝에는 항상 ‘나 때문에.’가 있었습니다.

‘내가 손님한테 예쁘게 말을 잘했더라면, 모욕도 당하지 않았을 텐데.’

‘내가 남자 보는 눈만 제대로 박혔어도 그깟 차 정도는 몰고 다녔을 텐데.’

‘내가 돈 버는 재주가 있었더라면 이 고생은 안 해도 될 텐데.’

못난 나를 책망하고 후회하면서 밤을 지새웠습니다.




다음날이 되면 삶의 희망을 놓은 얼굴로 하루를 또 무의미하게 보냈습니다.

의미 없는 하루하루가 쌓이자 돈이 떨어졌고, 쌀이 떨어졌습니다. 세금이 밀려 전기와 도시가스가 끊어지기 일보직전이었지요.

온 집안을 뒤졌지만 10원 하나 나오지 않았어요. 냉장고에는 먹을 게 없어 텅텅 비었고, 쌀은 바닥 나 밥을 지을 수도 없었어요. 당장 저녁에 먹을 끼니가 없자 비참함에 주방에 주저앉아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


그때 여섯 살짜리 딸아이가 뛰어 들어오더니 “엄마!” 하며 나를 부릅니다.

“엄마, 이거.”

조막 만 한 아이의 손으로 내민 것은 꼬깃꼬깃 구겨진 만 원 한 장이었어요.

“놀이터에서 주웠어. 나 또 놀다 올게.”

아이가 뛰어나간 후 구둣자국이 선명하게 찍힌 돈을 보자 또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만 원으로 제일 작은 쌀을 샀습니다.


그날 저녁, 신김치 하나로 갓 지은 밥을 먹는 아이들을 보며 목이 메어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여전히 생각 속에 파묻혀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어요. 무기력했고, 우울했습니다.

“볼 때마다 얼굴이 어두워요.”

사람들이 나를 보면 하는 말이었어요.

“무서워서 말도 못 붙이겠어요.”

그게 나였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