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피드백의 중요성

웹소설 작업 과정/피드백

by 날자 이조영

편집자의 피드백은 보물섬을 찾는 지도다.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나면 담당 편집자가 원고에 대한 리뷰를 보내준다.

출판사에 투고한 게 9월 2일이고, 계약한 게 16일이었다. 2주 만에 계약했으니 빠른 편이었지만, 중간에 추석이 끼지 않았다면 더 빨리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담당자가 정해진 건 20일, 나흘 뒤였다. 첫인사 메일과 함께 진행 안내를 받았다. 기획서와 1~5화의 원고 리뷰는 10월 중순에 보내주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다른 출판사에서 본부장님과 다이렉트로 진행할 때가 많아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봐야 할 원고가 많아 그렇다니, 그 사이 나는 나대로 계속 글을 쓰겠다고 했다.

그리고 26일에 수정한 기획서와 1~5화 원고를 다시 보냈다.


그로부터 3주가 지난 어제도 리뷰는 오지 않았다. 카카오 서버 대란을 겪은 며칠을 제외하면 꼬박 3주를 기다린 셈이다.

일주일이면 받았던 리뷰가 10월 중순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다는 건…. 볼 원고가 밀렸다는 거겠지.

원고가 많다는 건 출판사 입장에선 좋은 일이지만, 마냥 기다리고 있어야 할 작가로서는 답답이가 가슴에 산처럼 쌓인다. 편집자의 리뷰는 글의 방향성과 컨셉을 잡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미 기획서에서 글 방향을 정해 놓았다 하더라도, 그 글의 첫 번째 독자인 편집자의 날카로운 피드백은 작가의 좁은 식견을 넘어선다. 수백, 수천 개의 원고를 본 편집자의 감각은 보물섬을 찾아 떠나는 모험에서 지도와 같다. 그 지도를 얻지 못하면 망망대해에 혼자 떠돌 수도 있는 것이다.

작가 혼자만 그 방향이 맞다고 주장하면 뭣 하겠는가. 보물섬으로 가는 길은 따로 있는데.


이때 나와 결이 맞는 편집자를 만나면 작업은 꽤 수월해진다.

작품을 많이 써 본 작가라면 출판사보다는 편집자를 따라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는 걸 알 것이다. 안 맞는 편집자 때문에 고생 한두 번쯤은 해봤을 테니.


나도 같이 작업해 본 편집자 중에서 가장 잘 맞는 편집자와 계속 작업하다가, 오랜만에 다른 편집자와 일해 본다. 편한 것도 좋지만,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어서 새로운 환경과 자극이 필요했다.

신선한 느낌으로 시작은 했는데….

리, 리뷰를 언제 주시냐고요. ㅠㅠ


답답한 마음에 어제 문자를 보냈더니, 이번 주 금요일에 주겠단다.

장르를 현대 판타지(드라마)에서 현대 로맨스(웹소설)로 바꾼 뒤 로맨스 쪽으로 분량을 더 많이 할애하려고 노력했음에도, 막상 글을 쓰면 사건 위주가 되어버려서 고민에 빠져 있던 참이다.


웹소설 15~21회가 드라마 3부 분량이다. 18화까지 진도가 나갔고, 그 후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다시 대본 작업에 들어갔다.

어제 밤늦게까지 대본 작업을 하면서 후반은 거의 몰아치듯 사건 위주로 전개했다. 대본상으로는 이게 더 나은데, 웹소설이 문제다.


내가 쓰는 건 로맨스….

핵심은 남녀 주인공의 감정 라인….

“어디 갔어, 감정 라인?”

아, 젠장! 큰일 났다. 감정 라인이 실종됐다.

남의 글 피드백할 땐 그렇게 강조했던 감정 라인!!

남의 글 볼 땐 디테일까지 다 잡아내던 눈이, 내 글을 볼 땐 흐리멍덩. ‘하얀 건 백지요, 까만 건 글씨로다’의 수준으로 헤매게 되는 건 객.관.화의 부재 덕이다.


내 글에 내가 함몰되는 그때, 필요한 건 냉철하고 객관적인 피드백이다. 그래야 함몰된 상태에서 빠져나온다.

작가에게 필요한 건 ‘뻔한 내 머릿속’이 아닌, ‘뻔하지 않은 남의 머릿속’이다.

헤드를 바꿔 낄 수는 없으니, 글을 쓸 때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의 피드백을 받으면 좋은데. 나와는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는 게 도움이 된다. 다양한 관점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결을 가진 사람들은 편할지 몰라도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해 발전이 없다. 그러니 내 글에 대해 쓴소리를 하는 동료나 독자 때문에 상처받을 필요 없다. 오히려 그들의 냉철한 피드백이 도움이 될 때가 많다.

당시에는 기분 나쁘겠지만, 지나서 다시 내 글을 보면 객관적일 때가 있지 않던가.


그래서 초고를 쓴 뒤 최소 한두 달, 보통은 6개월 이상 묵혀 두었다가 다시 꺼내 읽는 작가들도 많다. 몰입해서 쓰는 당시에는 글에 함몰되어서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이다.


시간을 단축시켜 주는 것이 편집자의 피드백이다.


이건 공식적으로 받을 수 있는 피드백이고, 깨지면 깨질수록 멘탈이 나갈 수도 있지만, 수용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그 외 사람들의 피드백은 받기도 어렵지만, 받는다고 하더라도 쓴소리를 듣고 아무렇지 않기는 참 어렵다. 초보 작가일수록 이 부분이 취약한 분이 많은데, 사실 오래 작업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거르는 필터가 또 생기게 마련이다.


나는 웹소설이란 용어가 생기기 이전부터 시작했고, 그땐 무료 연재가 주를 이뤘다. 유료 연재가 가능할까? 회의적이던 시절이었으니,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가끔 무료 연재 시절을 떠올리면 재미난 일화가 많다.

연재를 하던 사이트에는 쪽지 기능이 있어서 댓글 외에 독자들에게 쪽지를 많이 받곤 했다. 그때 받은 쪽지로 멘탈이 와르르 무너지던 초보 작가 시절.

지금 생각하면 어디 아프신 분이구나 하고 거르는 독자였겠지만, 그땐 글을 쓰지 말아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중 세 부류를 꼽자면.


작가를 아바타로 생각하는 독자 : 내가 원하는 글은 그게 아니니, 이렇게 바꿔달라. 상세하게 내용을 적어 보낸다. 직접 쓰면 되지, 왜?

띄어쓰기 없는 분노조절장애 독자 : 글에 대한 비판(비판이라 적고, 비난이라 읽는다)을 적나라하게, 띄어쓰기 없이, 보낸다. 서쪽에서 뺨 맞고 나한테 화풀이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비판하기 이전에 띄어쓰기라도 해 줬으면…. 이런 쪽지를 거의 매일 받으면 나도 같이 돌아버릴 거 같다.

파일 보내 달라는 독자 : 내가 글을 다 못 읽었으니 메일로 원고를 보내달라고 당당히 요구한다. 아무리 무료라지만, 잠 못 자고 쓴 글을 보내달라고?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그땐 정말 개념 없는 독자도 많았다.


어이가 털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다가도, 응원하고 격려해주는 독자가 더 많아서 버틸 수 있었다.

‘좋아요.', ‘재밌어요.’, ‘글 너무 잘 쓰세요.’ 등의 칭찬도 힘이 되지만, 작가에게 진짜 큰 힘이 되는 독자는 바로 이런 분들이다.


객관적인 피드백을 해주는 독자 : 편집자 뺨치는 전문가다. 내 글을 분석한다는 건, 그만큼 애정이 깊고 공들여 읽고 있다는 반증이다. 작가가 간과했던 부분을 정확히 짚어줌으로써 정신이 번쩍 들게 해 준다. 정확하고 명쾌한 피드백은 작가에게는 없는 아이디어다. 드라마로 치면 보조작가의 역할을 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귀하기도 하고 감사는 배가 된다.

팬클럽 회장을 자처하는 독자 : 작가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팬클럽을 주도하고 회장 역할을 하는 분이다. 그렇다고 사적인 만남을 주도하진 않는다.(실제 독자들과의 만남을 가진 적은 있지만) 연재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독자들만의 문화라고 보면 된다. 이런 독자가 한 분 있으면 댓글 분위기가 달라진다. 소설보다 댓글이 더 재밌어지는 경우다.

댓글 한 번 안 쓰다가 갑자기 선물을 보내주는 독자 : 사실 댓글을 쓰는 독자보다 댓글은 안 쓰지만 꾸준히 보는 독자가 더 많다. 연재가 끝나는 막편에서 슬쩍 쪽지를 보내주시는 독자도 있다.

그런데 정말 놀랐던 일화는, 내 독자인 줄도 몰랐는데 선물을 보내주시겠다고 했을 때였다. 댓글 하나가 소중하던 때였으니, 선물은 어마어마한 사건(?)이었다. 숨은 독자가 더 많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 후로 꼬박꼬박 댓글을 써주는 독자들도 감사하지만, 침묵하는 독자들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이 깊어졌다.


웹소설도 보조작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모든 독자가 편집자 마인드로 내 글을 읽어 달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한 분이라도 더 있다면 작업하기가 수월할 것이다.

요즘처럼 웹소설 시장이 커지고 경쟁도 세졌을 때는 웹소설도 팀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다. 급여 문제가 걸려서 못 하고는 있지만, 웹소설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같이 글 쓰고 싶은 마음이 크다. 서로의 보조작가가 되어주는 것이다.


웹소설도 자료조사가 필수이기 때문에 혼자 하기가 버거울 때가 많다. ‘꽃과 총’만 하더라도 일제강점기, 독립군 후손들, 푸드 디렉터, 강력사건 등. 공부하고 수집해야 할 자료들이 너무 많다.

온전히 작가의 몫이긴 한데, 드라마처럼 팀워크로 이뤄지면 좀 더 낫지 않을까 한다.

드라마 보조작가도 잠깐 해봤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도 산으로 가서 곤란하긴 마찬가지. 메인작가를 제외한 보조작가는 3명이면 적당하다.


피드백의 중요성을 안 뒤로는 아무한테나 피드백을 해달라고 하지 않는다. 엄청난 실례이기도 하고, 해줘야 하는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도 있다.

협업하는 편집자, 또는 드라마 공부를 할 때 팀을 이뤄서 피드백을 많이 했는데, 이처럼 공부가 목적일 때는 가능하다.

개인 작업에서 피드백을 해 줄 사람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 반짝이는 별은 너무나 멀리 있고, 그만큼 아쉬움은 커진다.


초고는 쓰레기란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어떤 피드백이 오느냐에 따라서 기획을 다 엎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좋은 피드백이 글을 더 좋게 만드는 것만은 분명하기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