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나에게만 닿은 마음
'이 주소로 편지해라... 이 주소로 편지해라...'
이 말을 되뇌며 난간에 의지해 겨우 계단을 올랐다. 연습장에 남몰래 따라 써보던 그 글씨체를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다. 그런데, 편지하라니….
방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펜을 들었다. 입대 소식에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그동안 어떤 감정들을 견뎌야만 했는지 말하지 않았다. 훈련소에서 큰 어려움은 없었는지, 날이 더워져서 생활이 힘들지 않은지만을 물었다. 그저 선생님의 수업이 많이 생각난다고만 했다.
글은 담담한 척 써내려져 가고 있었지만, 옆에 놔둔 엽서를 자꾸만 어루만지는 동안 새어 나오는 웃음은 내내 멈춰지질 않았다.
다음날, 편지를 우체통에 넣기 위해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중력이 절반쯤 사라진 듯 걸음이 가벼웠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는 이른 아침, 덩굴장미의 검붉은 빛깔이 그 어느 때보다 눈을 사로잡았다. 느티나무 잎의 환한 푸르름이 짙게 검은 가지들 사이에서 눈부시게 빛났다.
교문을 들어서며,
'아마 지금쯤 난리가 났겠지?'
싶었다. 그분의 엽서를 받은 아이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서 선생이 지금 어느 부대에 계시는지를 말하고 있을 테지.
그럼 난 또 그런 일 같은 건 모른다는 얼굴을 하고서 아이들이 하는 얘기나 들어 봐야지라고 생각하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런데 복도는 고요하고 교실들도 조용했다. 여느 때와 같은 아침 풍경이었다. 우리 반 교실에 들어서니 역시 다를 바 없었다. 영문을 알 수 없어 책가방을 자리에 두고 늘 그렇듯이 손거울을 들고 자신의 얼굴을 살피고 있는 혜인이 곁으로 슬쩍 갔다.
“아이, 정말! 왜 여기만 이쪽으로 자라는 거지?”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는 브러시로 열심히 눈썹을 빗으며 짜증을 내고 있었다.
“혜인아, 혹시 국어 선생님한테서 엽서나 편지 안 왔어?”
“엽서? 웬 엽서? 아니.”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군대 가셨는데, 뭐 우리 같은 애들이 생각이나 나시겠어? 근데 왜? 누가 받았대?”
문득 커진 눈을 하고는 나를 쳐다본다.
“아니, 그냥. 왠지 너한테는 연락하지 않으실까 싶어서.”
“됐어, 됐어. 난 이제 새로운 사랑 할래. 말도 없이 떠나버린 그분을 뭐 하러 기다린다니? 이 미모에 넘어올 남자가 줄 섰는데, 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혜인이는 자신의 말을 개그로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는지 눈썹을 찡그리며 나를 위아래로 쳐다봤다.
아니다. 혜인이 말이 웃겨서 웃은 것이 아니다. 그분이 내게만 소식을 전한 것 같다는 행복한 착각이 들었다. 나와는 계속 편지를 주고받고 싶으신 거다.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올 생각을 안 했다. 나만 아는 비밀이 가슴속에서 뜨겁게 달궈지고 있었다.
그날은 담임 선생님의 잔소리도, 높낮이에 변화가 없는 수학 선생님의 말투도, 쉬는 시간 반 친구들의 소란스러움도 모두 아름다운 선율이 되었다.
늦은 밤, 또 한바탕 벌어진 부모님의 격한 다툼도 그날만큼은 나를 절망으로 끌어내리지 못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에드워드 엘가의 < 사랑의 인사 >를 몇 번이고 들었다.
이제 우리의 편지는 서로에게 언제까지 전해질 수 있을까? 방안 깊숙한 곳까지 환히 밝혀주고 있는 둥근달에게, 영원히 그럴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다.
'영원히', 그 말의 무게를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