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다시, 베란다를 찾다
집까지 어떻게 걸어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자꾸만 발을 헛디뎌서, 걷기가 몹시 불편했다는 기분만이 남아 있었다. 현관에 들어서며 습관처럼 우편함을 쳐다봤다. 철의 냉기만이 서늘하게 느껴질 뿐, 아무것도 없었다.
어떤 음식도 삼키기 힘들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온 편지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편지 어디에도 자신의 신상에 곧 찾아올 변화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한 번도 물건을 집어던져 본 적이 없던 내가 그 편지를 책상 위에 있는 힘껏 내동댕이 쳐버렸다.
수십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공감해 주던 우리였는데.….
때로 서로에 대한 걱정과 염려로 마음 졸였던 우리였는데….
골드문트와 나르치스 같은 우정을 나누고 있는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나버리다니….
가족들이 모두 잠든 시간, 그분의 편지가 든 상자를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상자를 만지작거려 보았다. 비로소 눈물이 차올랐다.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닦아도 닦아도 멈추지 않고 자꾸만 스며 나왔다. 싫다. 다시는 그분을 볼 수 없다니….
밤하늘이 물에 잠겨 버렸다. 달은 자꾸만 위, 아래로 흔들렸다. 혹시 그분도 저 달을 보고 있을까? 대체 어디에 계시는 건지 넌 알고 있니? 이젠 기다려도 소용이 없는 거겠지? 그날은 일기도 길게 쓸 수 없었다.
이제 학교 가는 일은 설레지 않았다. 교정 어디에도 그분은 없었다. 그분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국어 시간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았다. 교실 창밖으로 보이는 나뭇가지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새들의 움직임만을 멍한 눈으로 쫓아가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일주일을 견뎌내고, 그다음 주를 흘려보냈다. 한 주 한 주씩 시간이 흐르면서 친구들과 과학 선생님의 유머를 되새김질하며 웃기도 했고, 오후 자습에 오롯이 집중도 했다.
고입 시험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험 만만하게 보지 마라. 작년에 몇 명 떨어진 애들 있었어.”
담임 선생님은 카리스마로 무장한 비장한 말투와 날카로운 시선으로 우리를 압박하며 아침부터 긴장감을 조성했다.
“갈수록 시험이 어려워지는 추세라고 하니까 남은 기간 동안 정신 바짝 차리고 공부해라.”
나라고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상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날씨는 또 다른 계절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강렬해지는 태양은 몸의 온도를 삽시간에 올렸다. 반 시간을 걸어야 하는 하굣길은 점점 힘든 길이 되어 갔다. 그럴 때면 그늘지고 서늘한 아파트 현관이 반가워 아파트가 보이면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졌다.
뛰다시피 빠른 걸음으로 현관으로 들어섰다. 동시에 우편함으로 향하는 시선. 우편함에 꽂힌 아이보리빛 엽서 하나가 눈에 확 하고 들어와 꽂힌다. 그럴 리 없는 예감 하나가 뇌리에 스쳤다. 심장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다리가 저절로 움직였다. 엽서에 적힌 글씨가 살짝 보이기 시작했다. 익숙한 글씨체. 다시 또 예전 그날처럼 모든 것이 그대로 정지해 버렸다. 하지만 이번엔 계단을 뛰어오르지 못했다. 힘이 풀려 부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버티며 그 자리에 선 채 짧게 적힌 엽서를 한눈에 읽었다.
‘소식 전하지 못하고 떠나서 미안하다.
나는 자대 배치를 받았다.
앞으로 이 주소로 편지해라.’
그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멈춰 있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