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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엽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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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전자 Mar 22. 2023

우리는 다른 세계를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민과 기영

"정민아, 나중에는 외계인이랑도 사랑에 빠질 수 있지 않을까?" 기영은 혼잣말을 내뱉듯이 물었다.

"뭐?"

"아니, 암 것도 아니다."


둘은 나란히 앉아 맥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TV에서는 <인류의 NEXT LEVEL>이라는 우주탐사 다큐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열어놓은 베란다 틈으로 차가운 바람이 발끝을 스쳤다.


"그게 무슨 말이야? 외계인이랑 사랑에 빠진다고?" 정민은 언짢은 표정을 감춘 채 차분한 음성으로 물었다.


"아니, 그냥. 저런 거 보면 제2의 지구, 새로운 행성… 뭐 그런 거 찾으러 다니잖아. 만약에 인간이 정착하려는 행성에 외계인이라도 살고 있으면 어떡해. 같이 살아야 할 텐데."


정민은 자신의 편협한 시선을 버리려고 노력하면서 가만히 그의 말을 들었다. 잠깐의 침묵 속 기영이 말을 덧붙였다.


"아니다. 미국에 살던 원주민들도 그렇게 무자비하게 죽였는데, 외계인이라고 가만히 둘 리가 없지. 그래, 어벤저스만 해도 지구 침략자들 죽이는 내용인데." 그는 세상이 꺼질 듯한 한숨을 쉬었다.


정민은 기영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더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민은 TV 화면을 응시한 채 딱딱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래."


"… 아니, 요즘 국제결혼도 많고 혼혈아도 많잖아. 그런 것처럼 인간의 터전이 넓어지면 사랑의 영역도 넓어지지 않을까 싶었던 거지." 기영은 정민의 공감을 기대했던 것인지 정민의 언짢음을 눈치라도 챈 것인지 풀이 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민은 말없이 안주를 집었다. 기영이 뚱딴지같은 소리를 할 때마다 정민은 자신이 사랑에 빠졌던 그가 맞는지 혼란스러웠다.


여섯 번의 겨울이, 서로를 위해 하나씩 맞춰가려고 노력했던 시간들이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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