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z세대의 아이였다면
요즘 초등학생들은 피아노를 배우지 않는다.
내가 그들의 나이일 때 주변에 피아노를 배우지 않는 친구들은 없었다. 어느 동네에 가도 피아노 학원이 있었고 적어도 체르니까지는 배워야 했다. 우리 집에는 나와 동생이 피아노 콩쿠르에 나가서 찍은 사진이 거실 벽 어딘가에 걸려있었다. 요즘 초등학생 중에서 체르니를 아는 아이는 얼마나 될까? 그마저도 피아노에 소질이 있어 부모님이 전공을 시키려는 아이들일 것이다.
내가 영어 과외를 하는 초4 아이는 자신을 스스로 z세대라 일컫는다. "쌤은 z세대가 아니시죠?"라고 물으며 학원과 숙제와 테스트에 시달리는 자신을 안타까워한다. 그런데도 이들에게 피아노 학원을 권유하면 갸우뚱거리며 의아해한다.
"네? 피아노 학원이요? 저는 피아노 못 쳐요. 그리고 피아노 학원 간다고 테스트 A+ 받는 거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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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생 때 치던 피아노는 외할아버지가 엄마에게 대학 졸업 선물로 준 것이다. 그것으로 나와 동생이 피아노를 배웠다. 그리고 그것의 부품이 고장 날 때까지 쳤다. 이후에 산 피아노는 가나에까지 싣고 갔다.
"한국에 가서 뭐 치겠냐? 지금이야 시간도 많고 입시 준비도 안 하니까 치는 거지. 여기서 실컷 치고 가."
엄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피아노는 가나에서 돌아올 때 차이콥스키의 곡을 아주 멋들어지게 치는 학생에게 팔고 왔다. 그래서 지금 우리 집에는 피아노가 없냐고?
엄마는 한국에 오자마자 집에 피아노가 없으니 좀 허전하지 않으냐 하셨다. 그러곤 중고 피아노를 알아보러 다니셨다. 한국 공부하면서, 입시 준비하면서 스트레스받으면 피아노 치면서 풀라고. 그렇게 X세대의 자식들이 사는 우리 집에는 피아노가 '거기' 있었다. 엄마는 가끔 피아노를 치면서 당신의 아버지가 당신에게 선물한 그 피아노를 추억하곤 한다. 물론 엄마가 항상 치는 곡은 '젓가락 행진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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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엄마가 피아노를 알아보며 물었다.
"우리 그냥 전자 피아노 살까? 헤드셋 끼면 저녁에도 칠 수 있고 말이야."
나는 잠시 슬퍼졌다.
"싫어. 전자 피아노 가질 바엔 안 가질래."
지금은 거의 치지도 않는 피아노지만, 수건을 개어놓는 공간으로 쓰이는 피아노 의자이지만, 그것이 없었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울적해진다. 오히려 엄마의 권유대로 전자 피아노를 샀더라면 지금도 치고 있을지 모른다. 그것으로 노래를 연주하고 편집하여 유투브에 올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거실 한쪽에 있는 피아노는 Y세대인 나에게 아무 생각 없이 행복했던 옛날을 추억하게 한다.
피아노 덮개로 목도리를 만들어 장난치던 것을 기억하게 한다. 피아노 연습 동그라미 하나를 몰래 더 친 일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놀이터 정자에 가방을 던져두고 친구들과 정글짐에서 놀던 그때를 회상하게 한다.
X세대인 엄마에게 당신의 아버지와 유복했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게 한다. 당신의 자식들이 어려운 곡을 연습하며 낑낑대던 모습을 생각나게 할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옛날을 추억하게 될까? 안타깝지만 그것이 피아노는 아닐 것이다. 그것이 A+이 넘치는 성적표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