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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전자 May 10. 2020

7주차 자취요리

규제가 서서히 풀리는 뮌헨에서

0503 SUN

간단하게 오트밀을 먹고 옆집 친구가 집에 간다고 해서 주차장까지 바래다주고 왔다. 마지막을 먹을 때가 되자 달달해진 납작 복숭아와 함께.

볶음김치 계란볶음밥. 찬밥과 볶음김치, 약간의 고추장, 계란 하나 톡. 위에 김가루 솔솔.

저녁에는 고기를 구웠다. 올리브유를 두를 필요도 없고 고기만 바로 팬에 구우면 되기 때문에 편하다. 한국으로 돌아간 친구가 준 쌈장만 있으면 모든 게 완벽하다.


혼자 먹기 싫은 날이었다. 근처에 사는 프랑스 친구네로 놀러 갔다. '나랑 저녁 같이 먹을래?', '좋아. 내가 크레페 만들어 줄게!'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진 요즘, 이웃이 사촌보다 낫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가까이에 친구가 살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0504 MON

콘푸로스트 뚝딱. 이번주에는 콘푸로스트를 하루에 두 그릇씩 먹은 것 같다. 위가 커진 걸까?

점심은 후리가케 톡톡 뿌린 계란밥. 북엇국 블락국도 하나 만들었다.

지난주 옆집 친구가 잠깐 뮌헨에 왔을 때, 자기 할머니께서는 전쟁을 겪으신 세대이셔서 빵과 버터만 있어도 만족해하신다는 얘기를 해줬다. 물리적 전쟁을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나도 바게트 빵과 버터만 있어도 행복하다.


괜히 단백질도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살라미 한 장 추가.


0505 TUE

아침은 만들어 먹기 귀찮으니까 사과, 커피, 빵.


JACOBS 커피를 다 먹어간다. 새로운 커피를 찾으러 나서자!-! 스틱 말고 다른 종류를 사볼까?

점심은 비빔참치 찬스를 썼다. 따뜻한 밥을 하고 계란 후라이도 하나 톡. 그 위에 한국에서 가져온 비빔참치를 쭈욱. 정말 요물이다. 불맛과 매콤함을 동시에 잡은 비벼먹는 비빔참치.

과일이 먹고 싶어서, 바나나 중에서 가장 탄탄해서 사 온 Chiquita 바나나. 스포티파이 적힌 게 웃겨서 사진을 찍었는데, 바나나가 너무 맛있어서 놀랐다. 바나나는 역시 단단하고 건강하게 생긴 게 맛도 있다.

비만 안 오면 아름다운 우리 기숙사 전경. 인생의 모든 순간이 필터가 씌워진 건 아니지만, 이런 순간을 담을 수 있는 필터가 있다는 것은 아주 기쁜 일이다.

집에 와서 행복한 샐러드 만들어 먹기! 힘들게 산 발사믹 소스와 올리브유를 한 데 담아서 준비하고 토마토, 오이, 치즈를 먹고 싶은 만큼 깍둑썰기 한다. 바게트도 썰고 버터랑 작은 하몽도 준비한다. 그리고 하나하나 천천히 음미하면서 맛있게 먹기.


힘들 때나 아닐 때나, life goes on!


0506 WED

아침은 바닐라 오트밀 우유+오트밀! 바닐라 오트밀 우유는 생각보다 별로인 것 같다. 내 커피가 맛없어서인지 내가 못 만들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다음부터는 차라리 두유를 사 와야지.

흰소세지를 팔팔 끓는 물에 익히고, 밥 위에 어제 먹었던 비빔참치 올리기! '양이 왜 이렇게 적지?' 하면서 비빔참치 껍데기를 보니 1인분용이었다. 역시. 양이 적긴 했지만, 여전히 감칠맛 나고 맛있었던 점심 요리!


흰소세지는 팬에 굽는 것보다도 끓는 물에 오래 익혀서 야들야들하게 먹는 게 제일 맛있다.

드디어 만난 LMU 버디! 이 친구는 지난 학기 우리나라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왔다는데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고 굉장히 친절했다. 왓츠앱으로 연락해서 모르는걸 물어보면 장문의 답장으로 모든 걸 설명하고 해결해주려고 한 착한 친구. 실제로 만나보니 여전히 친절하고 수다쟁이에 귀여운 친구였다.


오랜만에 중심부로 나온 거였는데, 날씨가 좋아서인지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 상점들도 대다수 문을 열고. 물론 사람들이 다 마스크를 쓰고 다녀서 코로나 이전의 평소처럼 느껴지진 않았지만, 아주 오랜만에 사람 냄새도 나고 활기찬 도시의 모습을 느껴서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아! 다시 생각해도, 절대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통행금지 이전의 모습을 살짝 엿본 것 같아 짜릿했다. 덕분에 나도 조금은 활기찼던 날.

피자 한 판을 사들고 근처 아트 스쿨로 갔다. 버디 친구 덕분에 나도 LMU 학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대학생들이 같은 피자를 들고 잔디밭과 계단에 모여 앉아 수다 떨면서 놀고 있었다. 완벽하게 고급스러운 피자는 아니지만, 저렴한 가격에 따뜻한 햇살을 받고 또래 친구들과 같이 앉아있으면서 피자를 먹으니 일상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아, 코로나 이전에는 이렇게 행복했었구나.

버디 친구와 네 시간을 걷고 집에 돌아오니 배가 출출해졌다. 발사믹 소스에 올리브유를 섞어서 바게트 찍어먹기. 바게트+버터 조합 다음으로 좋아하는 구성이 되었다.


국제중학교를 다닌 탓에 유럽 출신 친구들이 꽤 있는데, 그중 크로아티아 친구와 가장 친했다. 독일에 오면 만나기로 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크로아티아로 가지도 독일로 오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친구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여전히 쿨하고 멋진 친구. 17시간 날아서 온 유럽인데, 한국에 돌아가기 전까지 우리 만나고 갈 수 있겠지?


0507 THU

Leibniz 버터 쿠키! 예전에 먹은 에데카 버터 쿠키와 같은 종류인데, Leibniz는 현지 사람들이 정말 많이 찾는다. 특히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많이 사가시는 걸 봤다.


Leibniz는 초콜렛 맛부터 통밀 쿠키까지 종류가 다양한데, 나는 저당 버터 쿠키를 샀다. 저당이어서 적당히 달고 엄청나게 맛있다. 에데카 버터 쿠키 맛이 생각 안 날 정도. 다음에는 두 개를 동시에 사 와서 맛 비교를 해보고 싶다. 아예 독일 마트 과자 비교를 해볼까?

점심은 바나나 요거트 볼! 바나나가 일곱 개 남았는데 서서히 익어가기도 하고, 저녁에 친구들과 모이기로 해서 점심은 간단하게.


이번에 산 플레인 요거트는 너무 맛이 없었다. 마지막 요거트도 유통기한 마지막 날이어서 겨우 먹었던. 산미가 너무 강하고 요거트의 고소한 맛이 안 났다. 앞으로 플레인 요거트는 프리미엄을 사야겠다.

간단하게 케이크 해 먹자고 모인 친구들이 쏘아 올린 작은 공. 케이크 만드는 데에 필요한 재료를 사러 갔다가 삼겹살도 사면서 일어난 일.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이야!


한 집에서는 삼겹살을 굽고, 한 집에서는 레몬 케이크를 구웠다. 심지어 어쩌다 보니 나의 지휘 아래에. 홍콩 친구가 삼겹살을 구워주고 프랑스 친구는 왔다 갔다 하면서 잡다한 일을 해줬다.


레몬 케이크 레시피는 이렇다. 박력분 180g+설탕 180g+실온 버터 110g+레몬 한 개 분량 제스트+베이킹파우더 1.5스푼+달걀 2개. 보울에 넣고 다 섞는다. 홍콩 친구가 앉아서 촘촘히 잘 섞어주었다. 170도로 예열한 오븐에 넣고 20분. 덜 익어서 10분 더 구웠다. 케이크가 익는 사이에 레몬주스를 준비한다. 레몬을 한 개 짜서 즙을 내고 같은 비율로 슈가 파우더를 넣어서 섞는다. 케이크를 오븐에서 꺼내서 포크로 구멍을 송송 내준 다음, 케이크 위에 레몬주스를 살살 부어준다.


친구들이 너무 맛있다고 찬사를 터트려서 아주 기뻤다. 프랑스 친구는 밥도 덜 먹었고 케이크를 먹으면서 자기 생일에 꼭 다시 해달라고 부탁했다. 여태껏 한식으로 칭찬을 받은 적은 거의 없지만, 베이킹은 언제나 칭찬을 받았다. 아무래도 나는 빵 만드는 데에 더 소질이 있는 것 같다.


아, 케이크 굽는 접시도 샀다. 마트에서 살 때는 2.99유로라고 붙어있길래 저렴해서 바로 집었다. 친구들을 다 보내고 영수증을 확인하니 12.99유로... 앞에 1은 어디로 갔던 걸까? 덕분에 매주 케이크를 구워야 할 것 같다.

어쩌다 알게 된 한국인 언니가 만들어 준 양념치킨. 운 좋은 내 친구들은 한국 음식도 먹을 수 있다면서 기쁨을 온몸으로 표시했다.


이웃집 강아지를 보게 된 날 알게 된 한국인 언니는 전기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뮌헨에서 박사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독일은 working student라고 일주일에 8시간 정도였나? 정해진 시간만큼 근무하면서 근무수당을 받는 제도가 있는데, 대기업의 working student로 일하고 계신다고 했다. (독일에서 인턴은 보통 무급이다. 홍콩 친구도 인턴은 무급 이랬는데.)


레몬 케이크를 나눠드리고 양념치킨과 감자를 받았다. 독일은 역시나 감자가 맛있다. 다음에는 양념치킨 레시피를 알려달라고 해야겠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온몸이 따뜻해진다. 이런 행복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하다.


0508 FRI

바닐라 오트밀 우유+오트밀+잘 익은 바나나 하나.

홍콩 친구가 주고 간 살구. 본인 입맛에 너무 셔서 못 먹겠다면서 가져왔다. 네 입에 시면 내 입에는 안 시겠냐! 정말 시고 맛이 없었다. 그래도 과일인데, 뭐. 살구가 이렇게 작고 귀여운지 처음 알았네.

오후에는 같은 기숙사에 사는 한국인 친구들과 모여서 버블티를 마시러 갔다. 넷이서 첫 외출이었네.


뮌헨은 규제가 서서히 풀리고 있다. 마스크는 의무 착용이 되었지만, 지난주부터 상점들은 모두 문을 열었다. 이렇게 규제가 풀리면 좋으면서도 불안하다. 항상 조심하고 조심해야겠다.


버블티 가게 앞에도 사람이 꽤 있었다. 특히 날씨가 좋아서 더 많았던 것 같다. 친구들 셋은 모두 아쌈 밀크티를 시켰다. 나는 리치 소다!


버블티를 먹으러 왔으면서 왜 아무도 타피오카 펄을 추가하지 않았느냐! 우리 바로 앞에서 타피오카 펄이 끊겼기 때문이다. 펄이 없으면 버블티를 사 먹는 이유가 뭐가 있냐고... 눈물을 흘리면서 소다를 시켰다. 아쌈 밀크티는 맹맹한 맛이었다. 달지도 않고 티 맛이 강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시원하지도 않고. 내가 집에서 만들어 먹는 밀크티가 훨씬 맛있었다. 리치 소다도 안 시원했는데, 오랜만에 사 먹는 탄산음료라 나름 만족하면서 마셨다.

피크닉 감성샷. 2인용 작은 돗자리에 4명이서 옹기종기 앉아있기.

저녁은 홍콩 친구가 닭고기 요리를 해준다고 해서 친구네 기숙사로 놀러 갔다. 와, 진짜, 정말로, 너무나도 맛있는 음식. 익힌 토마토와 닭고기 육수, 수프 위에 약간 떠오르는 기름. 내가 너무 좋아하는 홍콩 스타일 요리였다. 여권도 좋고 음식도 내 스타일인 홍콩, 나랑 잘 맞을 것 같은 느낌이다.


레시피는 모르겠지만, 친구가 생강부터 이름조차 기억하기 어려운 향신료까지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여러 가지 재료를 넣었다고 했다. 먹고 난 후 온몸이 짜릿했던 이유는 친구의 정성과 사랑 덕분이었을까? 온종일의 피곤함이 싹 내려가고 눈이 번쩍 뜨였다.

홍콩 친구가 나를 보며 '나는 네가 무언가를 먹으면서 맛없다고 한걸 본 적이 없는 것 같아'라고 했다. 최근에 홍콩 친구, 프랑스 친구, 나. 이렇게 셋이서 자주 모였는데, 프랑스 친구는 딱 취향인 음식만 먹고 입이 짧았기 때문에 나랑 더 비교되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나의 경우에는 맛없는 젤리를 먹어본 적은 있어도 맛없는 요리를 먹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누군가 나를 위해 만들어준 음식은 항상 맛있었던 것 같은데. 나의 입맛이 친절한 걸까, 장벽이 없는 걸까. 나도 입맛을 높인다면 모든 게 맛없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굳이 내 앞에 놓인 음식이 맛없다고 불평하면서 먹을 필요가 있을까.


0509 SAT

어제 설거지를 안 하고 자서 남는 보울이 없었다. 스테인리스 보울에 콘푸러스트 먹기. 와구와구-.

비스킷이랑 JACOBS 초코 커피도 함께. 생리 전 주여서 그런지 두 끼 같은 한 끼를 먹는다.

저녁은 홍콩 친구네 기숙사에서 인도 친구가 요리를 해준다고 해서 놀러 갔다. 나는 또 인도 음식에 환장한다. 이렇게 보니 내가 향신료 들어간 요리를 참 좋아하네.


인도 친구는 라마단 기간을 지내고 있어서 해가 진 후에야 밥을 먹는다. 우리도 아홉 시 반이 되어서야 저녁을 먹었다. 하지만 기다린 보람이 있는 요리였다. 기다림도 길지만, 손도 많이 가는 요리.


밥 위에 놓인 꼬치를 인도에서는 '씩'이라고 부르는데 그냥 케밥이란다. 아래 깔린 밥에는 닭고기가 들어갔다. 바질소스와 요거트소스도 만들어줬는데, 정성이 대단했다. 스토브도 쓰고 오븐도 쓰고, 초대해줘서 너무 고마운 친구들.

디저트는 이탈리아 친구가 만든 티라미수! 원래는 내가 케이크를 구워가려고 했는데, 친구가 티라미수를 만드는 바람에 다음 약속에도 의도치 않게 초대되었다.


티라미수 만드는 과정을 보지는 못했지만, 레시피는 아주 간단하다. 재료는 티라미수용 비스켓, 에스프레소, 마스카르포네 치즈, 코코아 가루. 티라미수용 비스켓을 에스프레소에 충분히 적신 후 밑바닥에 깔아준다. 그 위로 마스카르포네 치즈를 바른다. 두 겹을 만든 후, 맨 위에 카카오 가루를 뿌린다. 냉장고에 한 시간 정도 보관해주면 완성이다. 이탈리아 디저트여서 그런지 경쾌한 느낌이 드는 티라미수.


Quarantine 때문에 잊고 있었지만, 역시 사람은 사람들 사이에서 배우는 게 많은 것 같다. 사람과 부딪히면서 상황 속에서 배우고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면서 성장하는 것 같다. 잘못한 게 있으면 깨닫고 뉘우치고 고치고, 배울 점은 배우면서. 그렇게 사람들은 함께 성장하면서 더 좋은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듯하다. 사람에게는 사람이 필요하다! '코로나 이후에 모든 게 재택근무로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걱정했던 나의 과거를 떠올리며 웃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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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에 독일 정부가 발표한 바이에른주 규제 완화 계획. 이 정도면 너무 빠른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어제 마리엔플라츠(도시 중심부)에서는 규제를 철폐하라는 시위가 있었다고 한다. 아, 정말 이 사람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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