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지 Oct 22. 2021

간절하게 1080배

앞은 보이지 않았다.

뜬금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3000배를 하고 싶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3000배 하려면 몇시간 걸려?"

"왜, 한 6시간 걸리지? 너 하려고? 그럼 출근 못해 나중에 해~"


그래. 엄마  들어야지.


-


"엄마, 그럼 1080배는 좀 할만한가?"


"할만한게 어딨어, 다 채우지도 못할거면 시작하지말어"


다 할 수 있는데?


그리고는 월정사로 떠났다.


108염주와 10원짜리 동전 10개를 챙겼다. 집 앞 슈퍼에 갈 때도 입지 않을 법한 차림으로, 마스크를 낀 채 법당에 들어섰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후우-


108배를 했다. 동전을 하나 내려 놓았다. 땀방울이 깔아둔 수건 위로 떨어졌다. 두번째 108, 이제 겨우 두번째라는 생각에 시간이 가질 않았다. 그래도 끝이 났다. 동전 하나를 동전 위에 쌓았다. 세번째 108, 힘들었다.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 당신이 미웠다. 이별의 말을 뱉게한 당신이, 나를 담던 눈으로 다른 이를 담는 당신이 미치도록 미웠다. 어떻게 지나간지도 모르게 가장  염주알이  손으로 다시 돌아왔다. 네번째 108, 티셔츠가  젖었다. 초점은 시계에 멈춰있었다. 해낼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채웠다. 그래도 그냥 했다. 아무 생각없이 절을 하다  문득 당신의 얼굴이 떠오르면 방석에 얼굴을 파묻었다. 스님의 목탁소리와 기도소리에  울음이 섞여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있었다. 다섯번째 108,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뒤틀어진 골반은 역시나 통증을 유발했고, 무릎은 욱신거렸다. 이제 반이 지났다. 지금까지 해온  만큼만  하면 된다.


여섯번째 108배를 시작하면서 나는 쉬지 않기로 다짐했다. 대신, 마음이 무너지면 무너진채로 하염없이 울기로 했다. 네가 미워서 울고, 내가 가여워서 울고, 우리가 아름다워서 울고,  이상 우리일  없어서 울었다. 울면서 절을 하고, 절을 하면서 울었다. 그러다 숨이 막히면 한모금 물로 목을 축였다. 쉬지 않고 절을 했다. 내가 절을 하는 것인지, 쓰러지는 것인지도 모르고 엎드렸다 일어나는 동작을 반복했다. 눈물, , 그리움으로 가득  눈은  이상 무언가를 보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앞이 흐려졌다. 결국 두번의 108배가 남았다.


앞은 보이지 않았다. 다리도 내 것의 감각이 아니었다. 고질병인 허리도 욱신거렸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1080배를 못해낸다면, 다음 3000배에 도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몸을 지배했다. 정신만 놓지 않으면 그래도 1080배는 할 수 있었다. 그렇게 108배를 더했다. 그리고 눈 앞에는 9개의 동전으로 만들어진 탑이 쌓여있었다.


물을 마셨다. 그리고 처음 108배를 하는 마음으로 1배를 했다. 딱히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빨리 끝내고 집에 돌아가 친구들이랑 치킨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도 문득 내 삶이 불안했고, 또 문득 네가 떠올라 화가 났다. 그렇게 1배, 1배를 더하다보니 결국 10개의 동전탑이 눈 앞에 쌓였다.


그렇게 1080배를 끝마쳤다.




인생에 처음으로 좌절했던 10 어느 시기에 나는  절을 찾았다. 답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세상과 단절하여 지냈던 며칠이 나를 조금은 단단하게 만들었었다. 그때 나름대로  장소와 약속을 했던  같다. 결혼할 사람과 다시 이곳을 찾겠다고,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손을 잡고 같이 오겠다고, 그렇게 다짐을 했다. 그로부터 7 정도의 시간이 흘렀던 어느 날,  결국 너를 이끌고 이곳을 찾았다.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인지 알았던 너는, 정말 그곳에 같이 가도 되냐고, 네게 그런 기회를 주는거냐고 아이처럼 기뻐했었다. 네가 나를 잠시 기다리는 동안, 나를 굳건히 만들어준 부처님께 인사드렸다. 다시는 없을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1 동안 그리워했던  친구랑 이곳을 찾을  있어서 감사하다고 마음으로 말하고  손을 잡고 절을 나섰다.


-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하나다. 내가 당신으로 인해 이렇게 힘들었다고, 이렇게 고생했다고, 아팠다고, 그리고 이렇게 성장했다고. 그래서 고맙다고. 그날이 오면 나는 아무말 없이  글을 당신에게 보여줄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살필 것이다. 아니, 아마 나도  표정을 짓고 있겠지.  후의 일들은 그때가서 생각해야지.  시간들이 너를 떠나기 위한 과정이었는지, 너를  사랑하기 위한 과정이었는지.

작가의 이전글 이별 중독자의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