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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지 Nov 17. 2022

당신의 세계가 왔다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유리 온실 너머로

그 사람의 세계가 왔다. 저 깊은 곳에 박혀있던 결핍, 즐거워야만 한다는 강박, 벌어진 상처, 아름답고도 애처롭게 피어난 애정들.. 뿌옇게 무언가로 뒤덮여있던 유리 온실 너머로 나는 오늘 그의 세계를 보았다.


쉬이 들어다 볼 수 없을 것 같던 그의 세계는 의외로 쉽게 드러났다. 나의 치명적 단점이 나타나자 그의 방어 기제와 그의 세계가 동시에 나를 둘러쌌다. 그 안에서 난 지금보다도 작은 존재가 되어있었다. 나를 다그치는 것도, 그렇다고 화를 내는 것도 아닌, 당신은 내가 정해놓은 선을 넘었고, 때문에 나는 너를 내 세계에 들여놓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선언에, 그 넓고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그의 세계 안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당신은 과연 나의 세계를 궁금해했을까. 혹은 내 세계에 나도 모르는 사이 들어왔던 적이 있을까. 당신도 나처럼 상처받고 길을 잃었을까, 혹은 내 세계를 다 집어삼킬 정도로 몸집을 키워나갔을까.


나 또한 그랬던 적이 있음에, 당신이 적어도 내 앞에서 만큼은 남들에게 하듯 눈치 보지 않길 바랐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단 한 번의 경험으로도 사람들은 꽤나 많은 것들을 바꾸곤 하니까. 지난번 연애도 그랬다. 누군가를 편하게 하는 일은 누군가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일이 분명한데, 결국 나를 편하게 대하는 사람들은 나를 상처 주고 나에게서 떠나간다.


편함의 문제일까, 그들이 나쁜 사람이라 그런 걸까, 혹은 세계가 그냥 그런 걸까, 내가 잘못된 방식으로 사람들을 사랑하는 걸까.


오늘도 알 수 없는 물음들만 가득하다. 이 모든 이야기들의 결론이 지어지는 날이 오긴 할까. 그날이 오면 내 고민도 끝이 날까. 물음표가 아닌 온점으로 마쳐내는 이야기를 풀고 싶다.


그래도 나는 아직 당신의 파마약 냄새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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