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를 걷고 있는데, 저 앞 쪽에서 자전거를 탄 초등학생 두 명이 다가오고 있었어요. 잠시 후 한 친구가 찌푸린 얼굴로 과격하게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제 옆을 지나가고, 또 한 친구가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치며 쫓아가네요.
"형, 왜 그렇게 화가 나는데?
저도 그렇습니다.
'내가 왜, 하필 왜 내가 암에 걸렸나?' 꼭 이런 생각 때문은 아닙니다.
그냥 이유 없이 화가 날 때가 좀 있습니다. 아니 자주 그럽니다.
'버스가 왜 이렇게 안 와?', '미세 먼지가 왜 이렇게 많아?'
이럴 때도 있지만 구체적인 실체가 없을 때가 더 많습니다.
어떤 날은 이런 감정 상태에 기분이 더 나빠지기도 합니다.
'나 원래 안 그랬는데, 왜 이러지?'
'변한 것이라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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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이럴 때 도움을 주는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알고 온 건지 모르고 온 건지, 뾰로통한 얼굴로 소파에 기대어 있는 저에게 다가와, 제 허벅지에 자기 엉덩이를 붙이고는 드러누워 딴청을 피우는 반려견입니다.
이 녀석이 처음 집에 온 날, 초등생이던 딸과 아들이 떠오르는 발음 대로 '모미'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거기에 제가 의미를 지어 붙였습니다.
"그래 모미, 이름 참 좋다. '세상 모든 걸 아름답게(美) 보자'란 뜻이구나."
"우리 이제 모미 키우면서, 세상 모든 걸 예쁘게 바라보자."
많은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지는 삶의 지혜 중에,
화가 날 땐 아무것도 하지 말고, 크게 심호흡을 하며 숫자로 열을 세어 보라는 말이 있죠?
대신에 저는 천천히 반려견의 등줄기를 쓸어내립니다. 부드러운 털의 감촉을 느끼면서 한 번, 두 번, 세 번...
모미란 이름의 의미를 생각하며 숨소리에 맞추어 함께 호흡을 하다 보면 곧 평화가 찾아오지요.
만약 그래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동원합니다.
집 안의 가장 큰 거울 앞으로 갑니다. 거기엔 잔뜩 굳은 표정의 제가 있지요. 이마와 미간에는 없던 주름도 보이고요. 누가 봐도 호감을 갖기 어려운 인상입니다. 평소의 내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이 모습으로 사람들을 만날 수는 없다는 마음이 절로 들지요.
서둘러 볼과 입술 주위의 근육을 광대뼈까지 끌어올리고, 눈도 최대한 치켜뜨며 근육을 이완시킵니다. 입 꼬리를 찢어 하회탈 표정도 지어 보고, 영화 <마스크>에서 본 짐 캐리의 각양각색 표정 연기도 따라 해 봅니다. 한 오 분을 이러고 있으면 얼굴 전체로 미소가 조금 퍼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