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엔 안면부에 방사선 치료를 받아 얼굴은 부어 있고, 푸석푸석 윤기 없는 머리칼에, 부쩍 줄어든 머리숱, 덩달아 휑해진 눈썹, 언제 생겼는지 모르겠는 기미며 점들로 얼룩덜룩한 피부에, 침샘 파괴로 안구건조증이 심해져서 붉게 충혈된 눈을 가진, 자신 없는 표정의 남자가 있었거든요.
지난 추억이 떠올랐어요.
"조지 클루니(61년생)처럼 나이 드는 게 좋을까? 아니면 브래드 피트(63년생)처럼 나이 드는 게 좋을까?"
40대에 접어들며 더 이상 젊지 않음을 체감하던 시기, 또래 친구들과 누구를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뭇 진지한 토론을 한 적이 있었죠.
당시 50세 전후였던 두 배우는 둘 다 여전히 멋졌지만, 스타일은 아주 달랐죠
한 사람은 단정한 흰머리에 늘 젠틀한 모습으로 자기 나이처럼 보이지만 멋진 사람이었고 또 한 사람은 길게 늘어뜨린 갈색 머리에 여전히 터프한 매력으로 자기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멋진 사람이었죠.
막상막하의 대결이었어요.
고개 들어 거울 속 얼굴을 다시 보고는, '썩소'를 날리고 돌아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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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야구 예능 프로그램 <최강 야구>를 보는데, 한 장면에 눈이 번쩍 뜨였어요.
80대 노감독이 은퇴한 40대의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일침을 가합니다.
"여러분들은 프로 출신이고, 지금 현재도 프로야."
"돈 받는다는 건 프로라는 것이야."
"악을 품고 경기장에 들어가라. 그렇지 않으면 여기에 있을 가치가 없다."
프로야구 선수로는 은퇴했더라도, 방송에 출연해서 돈을 받고 야구를 하는 이상 최선을 다해 뛰라는 김성근 감독님의 말씀이었죠. 여전하시더군요.
프로야구 구단 7곳에서 감독을 한 이 분을 사람들은 '야신'이라고 부릅니다. 약팀을 맡아도 좋은 성적을 내는 능력이 '야구 신'의 경지라는 공감대에서 나온 별명이지요.
자기가 일하는 분야에서 신이라 불린다면, 이 보다 영광스러운 일이 있을까요?
김 감독님은 제게, 좋아하는 야구 감독 그 이상이었습니다. 배울 점이 아주 많은 리더였어요.
야구에 대한 열정뿐 아니라, 조직 운영 철학과 승리에 대한 통찰을 가진 그를 존경했습니다. 책도 사보고 강연도 찾아 듣곤 했어요. 특히 이분 삶의 신조인 일구이무(一球二無 ; 공 하나에 다음은 없다) 정신은, 나태해질 때마다 저를 깨워주었죠.
비록 방송이지만 직접 펑고(야수의 수비 연습을 위하여 공을 쳐 주는 일)를 하며 선수들을 독려하는 모습은 대단했습니다.
어느 신문에서 보니, 80세가 넘은 지금도 매일 2시간 이상 운동하며 건강 관리를 한다고 하는데, 인터뷰하는 긴 시간 내내 손에서 악력기를 놓지 않더랍니다. 그 이유는 좋아하는 야구를 계속하고 싶어서라고 하고요.
그의 책에서 '죽을 때까지 야구하는 게 소원'이라고 쓴 글을 읽은 기억이 나더군요. 이젠 노년기의 롤모델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후 김성근 감독님이 tvn <유퀴즈>에 출연했는데, 방송 말미 인터뷰에서 하는 얘기를 듣고는 깜짝 놀랐어요.
"내가 암 수술을 세 번 했어요."
감독으로 재임 중에 신장암 수술 두 번, 간암 수술 한 번을 받았답니다.
자세한 얘기가 없어 찾아본 자료엔 이런 이야기들이 있더군요.
"암인 걸 알았을 때, 죽으면 어떡하나 그런 생각보다 야구 못하면 어떡하나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입원 중엔 야구장이 보이는 병원 복도를 계속 걸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저기로 돌아가겠다고 생각하며."
"수술받을 때마다 구단이나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그 보다 상대에게 내 약점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마취 안 한 채로 간암 수술을 받고 다음날 퇴원하자마자 경기장으로 갔다."
"피가 새어 나와 기저귀를 차고 연습장으로 가기도 했다."
"아프다는 말을 절대 앞에 세우지 않는다."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으면 끝끝내 이긴다는 것, 내가 증명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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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저 암 환자입니다'라고 밝히고 싶을 때가 있어요.
불리한 상황일 때면 환자라는 그늘에 숨고 싶은 마음이 커지곤 해요. 그렇게 받은 핸디캡으로 면피를 하거나 원하는 걸 얻고 싶은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