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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나무 Sep 19. 2024

2-11  지금 나의 우상은 조던 아닌 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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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디에 미히, 끄라스 띠비(Hodie mihi, Cras tibi)'

로마의 공동묘지 입구에는 이런 라틴어 문구가 적혀 있다고 합니다.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란 뜻이랍니다.


위협이나 저주의 말은 아닐 겁니다.

나를 보며, 너의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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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죽음을 대비하면서 살려고 하는 습관이 생겼어."

MBC <전지적 참견시점>에서 방송인 홍진경이 난소암 판정을 받고 깨달은 것을 동료 연예인에게 얘기하더군요.


자신의 직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일화도 덧붙였어요.

그녀는 항암 치료 하던 긴 시간을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깔깔대고 웃으며 견뎠답니다. 이런 일이 있기 전에는 돈을 버는 목적으로 방송 활동을 했지만, 그때의 경험을 통해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일'이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부터 예능인이라는 직업에 자부심이 생겼고, 자신이 자랑스러워졌다고 하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암 치료 과정에서 죽음을 떠올리게 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다 죽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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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프로농구(NBA)의 전설적인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Kobe Bryant, 41)가 2020년 1월 26일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딸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이 기사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농구를 좋아하는 저도 물론이고요.


2016년 은퇴한 코비 브라이언트는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그는 20년 동안 한 팀(Los Angeles Lakers)에서만 활약했으며, 5번의 NBA 챔피언십 우승, 2번의 NBA 파이널 MVP, 그리고 18번의 NBA 올스타 선정, 2번의 올림픽 금메달 같은 엄청난 성과를 만들어냈습니다. 그의 탁월한 득점력, 수비력, 경기 장악력은 많은 팬들과 선수들에게 감명을 주었죠.


사고 이후, 많은 추모가 이어졌습니다.

팬들은 그의 홈구장에 모여 꽃다발과 편지를 바치며 애도했고, 거리 곳곳에는 추모의 조명이 켜졌으며, 그의 벽화가 그려졌어요. 유명 할리우드 스타들과 축구, 골프 등 다른 종목의 세계적 스타들도 공개적으로 그를 추모했어요.

NBA 선수들은 경기 시작 후, 24초 간 공격을 하지 않고, 8초 간 중앙선을 넘어가지 않는 추모 의식을 진행했습니다. 그 이유는 코비 브라이언트의 등번호가 24번과 8번이었기 때문이에요. 관중들은 기립하여 박수로 함께 했죠.

그를 잘 아는 농구계 선후배들은 더 많이 안타까워했어요. 농구 황제로 불리는 마이클 조던은 추모사에서 "내 일부분이 죽은 것 같은 기분이다" 라며 굵은 눈물을 쏟았고, 한 때 리그를 호령하던 슈퍼스타였던 앨런 아이버슨도 "그는 내 후배였지만, 그럼에도 난 그를 존경했습니다. 그의 위대함을요"라고 인터뷰하며 울먹였습니다. 또, 어느 농구 팬이 우연히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눈물 흘리며 농구장 밖을 걸어가는 현세대 농구 제왕, 르브론 제임스의 영상은 많은 네티즌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습니다.


추모 열기가 대단했습니다.

'그가 농구를 너무나 잘해서일까?', 그것만이 아닌 것 같았어요.

어떤 삶을 살았기에 모두들 내 가족같이 슬퍼하고, 애도하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추모 행사를 본 후 그에 대해 더 알아보게 되었고, 그때 알게 된 코비는 그전까지 제가 알던, 마이클 조던에 버금가는 뛰어난 슈터(슛 성공률이 높은 농구 선수)만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그는 NBA에서 연습량이 가장 많은 선수였습니다.

넷플릭스에 보면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을 다룬 다큐멘터리 <The Redeem Team>이 있는데요, 여기에 관련한 일화가 있더라고요.

전지훈련 중 어느 날, 코비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이 밤새 클럽에서 놀고 숙소로 들어오다가 호텔 로비에서 운동복 차림의 그와 마주쳤는데요. 그때 시간이 새벽 5시였답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코비는 그 시간에 이미 헬스클럽에서 땀을 흠뻑 흘린 상태였답니다. 매일 새벽 4시에 운동을 시작하는 사람이니까요. 땀 흘려 세계 최고가 된 선수들 사이에서도 늘 코비는 '넘사벽'의 훈련량을 가져갔답니다. 선수 생활 내내 말이죠.


아침 훈련과 관련해서 그는 이런 인터뷰를 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매일 아침잠에서 깨어나,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다면, 아마도 직업을 바꾸시는 게 나을 겁니다.", "그래서는 곤란합니다. 그 시간에는 이미 훈련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코비는 잠깐의 슬럼프 이후 등번호를 기존 8번에서 24번으로 바꿨는데요. 그 이유가 하루가 24시간이고, 농구 경기에서 공격 제한 시간이 24초 이기 때문이랍니다. 매 시간, 매 초마다 최선을 다하겠다, 한 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은 번호라고 합니다.

마이클 조던의 인터뷰에서처럼 그는 늘 농구 코트에 자신의 모든 걸 던진 사람이었습니다.


알면 알수록 굉장했습니다.

코비에게 농구는 어떤 '의미'였길래, '이십 년 간의 선수 생활 내내 이런 열정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한 궁금증은 그의 은퇴 후 인터뷰를 보고 풀렸어요.

"저에겐 삶의 의미이자 목적이 있었습니다."

"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농구 선수 중 한 명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매일 쉬지 않고 노력했습니다."


은퇴 후에도, 그의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 계발 정신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넘쳐났고, 그의 별명을 딴 '맘바 멘탈리티(Mamba Mentality)'는 그를 대표하는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절대 포기하지 않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이 정신은 농구를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사람들이 코비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어요.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비단, 그의 화려한 농구 기술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한 인간의 삶이었어요. 농구하는 한 사람의 '인간 극장'에 감동했던 것입니다.


그에겐 누구보다 뛰어난 열정이 있었고, 그 열정의 배경에는 위대한 선수가 되겠다는 분명한 삶의 목표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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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코비 브라이언트가 몇 년 후 헬기 사고가 있을 걸 미리 알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 생각해 보았어요.

"연습은 대충 하고, 삶의 여유를 즐겼을까요?"

제 생각엔, 그러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코비라면 주어진 하루하루를 더 열심히, 더 충실히 보냈을 것 같아요. 그에겐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 되겠다는 분명한 삶의 목표가 있었으니까요.


오늘이 소중한 이유는 죽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 삶을 가치 있게 해 줄 오늘이었는지,

내 죽음을 후회 없게 만들어줄 오늘이었는지

다시 생각해 봅니다.






� 미국의 유명 힙합 가수 카녜이 웨스트(Ye)가 24년 한국 내한 공연에서 마지막 곡으로, 코비 브라이언트를 추모하는 노래 '24'를 불렀습니다. 사후에도 오랜 시간 사랑받는 사람이면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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