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근심이 많은 세상이지요. 저도 예외는 아닌데요. 여기에 혹이 하나 더해졌습니다. 이번엔 아주 큰 녀석이지요.
암 환자로 살아간다는 게 그런 모양입니다. 다른 환자분들도 이러저러한 걱정 보따리들을 잔뜩 머리에 이고 계시더라고요.
다시 재발하는 것은 아닐까, 통증이 더 심해지는 건 아닐까, 완치가 될 수 있을까, 예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까, 비용은 앞으로 얼마가 더 필요할까...
그러다 보니 '캔서 블루(암으로 인한 우울)' 상태에 있는 분들이 많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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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 있을 때,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때는 진짜 눈물이 무엇인지 몰랐단다. 나는 아무 걱정 없는 궁전에 살고 있었으니까. 슬픔은 결코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지... "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에서 죽은 후 기둥 위의 동상이 된 왕자가 그의 손, 발이 되어 준 제비와 나눈 대화의 한 구절입니다.
이 '행복한 왕자'가 살았다는 아무 걱정 없는, 슬픔은 들어올 수 없는 궁전이 - 김수현, 김지원 주연의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 나오더군요.
극 중 두 주인공은 열애 끝에 결혼을 했지만, 행복은 잠시였고 냉랭한 결혼 생활 3년 만에 이혼을 하게 되고 아내는 불치병에 걸린 채 가족 사업에서도 위기를 맞게 됩니다. 그런 두 사람이 걱정 없던 시절, 곧 닥칠 우울한 미래는 모른 채 여행하던 곳이 독일 포츠담에 있는 '상수시 궁전'입니다.
프랑스어로 ‘상수시(sans souci)’는 ‘걱정 없는’ 이란 뜻이라네요. 이 궁전은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2세가 휴식을 취하기 위해 만든 여름 궁전이고, 왕은 이곳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문인들과 대화를 하고 예술을 즐겼다고 합니다. 그는 죽으면 여기에 묻어 달라고 할 정도로 이곳을 좋아했다고 하네요.
절대 권력자였던 그도 늘 행복한 왕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오죽하면 '걱정 없는 궁전'을 따로 만들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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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너무 심각한 드라마보다, 생각 없이 웃으며 빠져들 수 있는 드라마를 찾게 됩니다.
이런 드라마를'뇌빼드'라 부르더군요.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현실성 등을 따지지 않고 단순한 줄거리를 편하게 웃으며 즐기면 되는 드라마, 즉 뇌를 빼놓고 봐도 되는 드라마란 의미랍니다. 이런 드라마가 좋은 점은 뇌를 빼놓아서인지 보다 보면 어느새 걱정에서 벗어나 있게 되는 것이더라고요.
우리에겐 틈틈이 근심을 풀어놓을 수 있는 피난처가 필요하지요.
그 피난처는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드라마 '뇌빼드'여도 좋고,
한 입 베어 물면 크림이 터져 나와 입술을 하얗게 만드는 달콤한 디저트 '뇌빼디'여도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