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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친구도 잘 이겨냈으니, 우리 아들도 잘 해내리라 믿는다."
암 수술을 앞두고 있는 저에게, 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어요.
'후각신경아세포종'이란 흔치 않은 종류의 암 환자가 된 후, 얼마 없는 인터넷 검색 결과 속에서 귀한 자료를 찾을 수 있었어요. 저와 같은 암으로 수술을 받은 환자가 매일 블로그에 그 과정을 자세히 공유했더라고요.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저에게는 이런 상황에도 담담하게 글을 올리는 젊은 환자가 너무나 대단해 보였어요.
덕분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얻을 수 있었고, 고통을 인내해 가는 모습이나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며 지향해야 할 마음가짐도 배울 수 있었어요.
그의 글은 어두운 숲 속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던 저에게 희망의 길을 보여주었어요.
따라갈 선배가 있다는 건, 큰 힘이 되더라고요.
이 환자 덕에, 엄마도 저도 큰 용기를 얻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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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이 나의 삶이 된다.'
영화 <타인의 삶>을 보고 든 생각입니다.
이 영화의 도입부에서, 동독의 문화부 장관이 드라이만에게 이야기합니다.
"인간은 변하지 않아"
우리도 흔히 하는 말이죠. 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두 사람은 독일이 통일되기 전, 동독에서 감시자와 피감시자로 만났어요. 감시자 비즐리는 국가 정보기관의 냉혈한 비밀경찰이었고, 피감시자 드라이만은 사회주의 체제에 협조하는 유명 극작가였죠.
하지만 이후 5년의 시간은 그들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꿔 놓았죠. 타인의 삶이 그들의 삶 속에 깊이 침투한 영향 때문이었어요.
드라이만은 자신이 존경하는 선배 예르스카의 죽음을 계기로, 용기 내어 반정부 글을 쓰는 삶으로 전향했고, 5년 동안 하루 종일 그를 감시하던 비즐리는 그간의 신념에 반하는 반체제 행위를 하게 됩니다. 드라이만의 삶에 깊이 빠져든 비즐리가 자신에게 올 큰 피해를 알고도 위기에 빠진 그를 구한 겁니다.
비즐리의 일방적인 도움으로 끝난 것 같던 두 사람의 인연은, 독일이 통일된 2년 후 다시 이어져요. 드라이만이 사회주의 체제 시절의 감찰 자료 열람을 통해 그간의 사정을 파악하게 되고, 비즐리의 삶이 자신의 삶을 바꾸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요. 이번엔 그가 비즐리의 과거 행적을 감시 아닌 감시를 하게 된 거죠.
전후 사정을 알게 된 드라이만은 그의 신작 소설을 비즐리에게 헌정합니다.
이는 드라이만을 돕다가 일그러졌던 비즐리의 삶을 다시 미소 짓게 하는 선물이 되죠.
대화 한번 나눈 적 없는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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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친구들의 생각과 행동에 많은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던 것처럼, 여전히 타인의 삶은 나의 삶이 되고, 나의 삶도 타인의 삶이 됩니다.
영화 <타인의 삶>을 통해, 또 선배 암 환자를 통해, 내가 '잘'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어요.
다들 저를 보면 무언가를 떠올립니다.
그 떠올려진 모습이 - 힘든 상황에 지쳐, 삶의 의욕을 잃고 죽음만 바라보고 있는 실망스러운 사람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힘차게 인생을 개척해 가는 멋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저를 떠올리며, '암 환자도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나도 더 힘내보자'라고 다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내가 잘 살아야 할 이유입니다.
오늘의 내가 다른 누군가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 당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요?
브런치북 1편 '친구들아, 내가 먼저 암 환자가 되었네 (12화)'에 이어,
2편 '아픈 이의 일어서려는 마음 (15화)'의 연재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암 환자가 되어 브런치와 함께 한 지난 시간은 저에겐 치유의 시간이었습니다.
글을 쓰고 읽으며, 몸도 마음도 훨씬 건강해진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기세를 이어 조만간 3편을 연재할 예정입니다.
글을 읽어 주신 분, 모두 감사합니다.
스트레스 받지 않는 시간, 행복이 넘치는 시간을 많이 만드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