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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석창 Mar 11. 2017

거짓말쟁이

선배. 저는 종종 선배 글을 보면 울컥해요.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어요. 물론 선배가 글을 잘 써서 그렇지만, 그거 말고 다른 이유도 있을 거 같아요.
그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선배가 만든 러닝 매거진 '러너스월드' 봤어요. 스튜디오 갔다가 성재선배 책상 위에 있는 걸 슬쩍 집어왔어요. 저는 러닝 안 해요. 그냥 선배가 만들었다길래 집어왔어요. 선배의 결과물이 선배의 근황이잖아요. 제가 자주 연락드리는 살가운 놈도 못되고요. 그냥 선배가 이렇게 저렇게 잘 지내시는지 확인하고 싶었어요.

러닝에 관심 없다 보니 제일 먼저 편집장 글을 읽게 되더라고요. 반가운 사진과 반가운 문체가 있는 페이지 말이에요.

그 글을 보면서 울컥했어요.
그 이유를 모르겠어서 조금 화가 나요.

사실 저 지난달에 러닝에 관한 글을 썼어요. 달리기에 대해 좁쌀만큼도 모르면서 제법 잰 체 하며 썼어요. 좀 더 그럴싸하게 보이려고 책도 읽었어요. 김연수 작가가 번역한 <달리기와 존재하기>,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영국 <엘르> 에디터 헤민슬리의 <러닝 라이크 어 걸> 이렇게 세 권을 읽었어요. 제 자신이 더 가증스러웠던 건 이 세 권을 읽는 내내 집에 택시를 타고 갔다는 거예요. 마감에 임박해서 읽었거든요. 뛰기는커녕 걷지도 않는 놈이 이런 책을 읽는다는 게 너무나도 불경스럽잖아요.

더 웃긴 건 제가 책을 읽으면서 공감했어요. 지금은 딱히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데, 당시에는 느끼면서 읽었어요. 책들이 말하고자 했던 것들이 비슷했거든요. 그래서 러닝에 대해 느끼기 쉬웠어요. 아니... 느끼는 척 하기 쉬웠어요. 내가 느꼈던 건, 

'달리는 거 뭐 없다.'

아무꺼나 먹어도 살이 안 찌는 높은 기초대사량을 얻기 위해 달리는 러너, 봉긋한 엉덩이와 매끄러운 다리를 만들기 위해 달리는 러너, 지구의 평화를 위해 달리는 러너... 그런 러너는 없더라고요.

러너는 그냥 달릴 뿐이래요.
하루키 책 중에 그럴싸한 문장이 많아요. 지금 억지로 생각해보니 몇 개 기억나는 문장도 있어요. 기억난다기보다 그냥 이런 맥락이었던 거 같아요. 


'공백을 획득하기 위해 달린다.'
'나는 달리면서 적당히 추울 때 추위에 대해 생각하고, 적당히 더울 때는 더위에 대해 생각한다.'

진짜 허무하잖아요. 아무것도 아니기 위해서 달린다는 게.
읽으면서 '러닝은 명상 같은 거구나'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러닝은

'무언가 비우기 위해서 하는 행위', '새롭고 더 나은 무언가로 채울 공허한 공간을 만드는 행위'

같은 건가 봐요. 


저는 선배가 언덕을 올라가면 딱히 별다른 생각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 힘들 게 언덕에 올라 '신발!'이라고 뱉었을 때. 무언가가 선배에게 왔을 거라고 지레짐작해요. 제 앞에 이렇게 책 한 권이 있다는 게 짐작한 이유에요.

제가 생각하는 선배는 항상 달리고 있는 사람이에요. 꼭 물리적으로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있어도 말이에요. 그런 선배에게 러닝이 참 잘 어울려요. 이제는 직함마저 잘 어울리게 되었어요. 테이핑 기능이 있는 러닝 바지처럼요.

선배는 늘 움직여요. 저는 늘 앉아서 생각만 해요. 그래서 거짓말이 늘어요. 그래서 울컥하고 화가 나요. 


저도 머리가 하야질 때까지 달려보면 좀 알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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