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오후로 꽉 찬 일요일 보강수업이 끝나는 시간이 되면, 줄이 갑자기 느슨해지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몸의 힘이 스르르 빠지고 쉴 곳을 찾아 누이기 바쁘다. 쉴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던 머리도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은 번아웃의 상태가 된다. 일요일 연재글을 쓴다는 것은 세상 피곤하고 힘든 노동이 되어버린다. 꼬박꼬박 연재를 할 때는 한 번이라도 놓치면 큰일이 일어날 것 같더니 한 번 연재글을 놓치고 나도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감각은 무뎌졌다.
아이들은 주말이면 각종 과목들의 보강으로 끌려다닌다. 사교육 학원 선생님들은 아이들 쟁탈전이 벌어진다. 나는 시험 치기 한 달 전부터 주말 보강을 하기 때문에 미리 날짜를 맞추어 결손을 없게 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렇게 정해놓아도 앞 전 학원에서 아이의 결손 내용을 피드백하기 위해 몇 시간이고 남겨놓는 날은 어김없이 전화가 걸려온다.
" 선생님 진짜 죄송한데요 학원에서 이제 마쳐서 출발하는데 많이 늦어질 것 같아요"
예전, 혈기 왕성한 시절에는 앞전 학원에 전화까지 해서 아이를 보내달라고 했다. 다음 학원 수업이 정해져 있다면 일단은 아이를 보내고 다른 시간에 다시 보강수업을 진행하던지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의 스케쥴,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다음 학원의 스케줄은 아랑곳없이 자신만의 독점시간처럼 써 버린다면 사교육의 상도덕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시험을 코 앞에 남겨둔 학원가의 모습과 애타는 선생님들의 마음이 겹겹이 덧칠해져시험 기간 벌어지는 아이들 쟁탈전, 아이들의 뺑뺑이 도는 학원 기행은 서글프면서도 서로 버텨주기를 염원하는 시간이다.
" 선생님. 버스 타고 오다가 깜빡 졸았는데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어요 "
버스를 타고 오다가 아이는 졸았고, 이미 수업시간보다 2시간 30분이나 지나 있었다.
너무 늦었으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아이는 꾸역꾸역 학원에 왔다. 늦는다는 전화를 한 지 3시간 뒤였다.
집으로 가라고 했는데 왜 왔냐는 물음에 아이는 채점만 하고 가겠다고 한다. 마침 배달주문 해 놓은 노랗게 잘 튀겨진 치킨 다리를 접시에 한 가득 담아 주었다.
" 저녁은 먹었냐?"
잘 먹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아이는 접시에 코를 박고 치킨 다리를 뜯기 바쁘다. 순식간에 뼈만 앙상하게 남은 접시를 뒤로 하며 싱긋 웃고는 집으로 갈 채비를 한다.
3시간 만에 학원에 온 아이를 달리 무엇으로 환대할 수 있을까.
중간고사를 준비하는 여정이 늘 만만하지는 않다.
여러 번 풀고 풀었던 문제임이 분명한데 아이들은 내 피드백이 무색할 만큼 기억해내지 못한다. 잦은 연산실수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어떻게 진행되는 풀이인 줄 알았다면 정답을 내야 하는것이 맞는데 마지막에 실수가 쏟아지는 것이다. 그 허망함과 노여운 분노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아이들이랍시고 나의 날 선 야단을 듣고 있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어쨌든 공부를 안 하는 것도 아니고 한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내가 가진 욕심과 기대일 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내가 거는 욕심과 기대, 아이들의 능력치와의 접점을 유지하는 것은 늘 힘겹다.
종종 내 안의 감정을 마주하며 심호흡을 하고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 하는 순간과 마주한다.
마음을 비운다는 거... 아주 거창해 보일 수 있지만, 결국은 내 마음을 돌보는 일이다. 내려놓고 과정을 즐길 줄 아는 이가 되는 것, 내가 쥔 것에 대해 충분히 인정하고 감사하는 일, 기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되뇌고 머리로 되새기지만 시험 결과는 좌절감, 실망감, 의욕 상실을 가져올 때도 있다. 내가 버텨야 할 무게이겠지만, 때로는 "수고하셨어요"라는 한 마디 위로를 바라기도 한다.
사교육자의 삶은 그렇다.
아이들에게 단단함으로 벼터주어야 하고, 내 안의 욕심과 기대치와 싸워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정심으로 무장해 주어야 하고, 그들의 불안에 대적해 자신감을 심어주어야 하며, 때로는 나의 오만을 뼈 때리게 느껴야 한다. 그것을 분기별로 되풀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몇 십 년을 해도, 단련은 되겠지만 익숙해지지는 않는다. 매 년, 매 순간 마주하는 아이들이 달라지기 때문일 터다. 깨지기 쉬운 각양각색의 유리 같은 아이들과의 상호작용은 두렵기도 하지만, 한 톨의 희열과 보람은 이 일을 아무렇게나 하지 않을 이유이기도 하다.
타인이 주는 위로가 무어 그리 중할까. 폭풍 같은 일 년의 첫 시험을 끝내고 쓰는 '글'로서, 나를 스스로 구원하며 연재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