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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두리e Apr 07. 2024

답지를 베끼는 아이의 마음

두려움이 빚어낸 회피

고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 M,,  참하고 얌전한 것이 성실이라고 쓰인 생김새였다. 하지만 수업이 진행되면서 M이 답지를 베낀다는 느낌을 받았다.


수업을 몇 번 정도 해보면 어느 정도 실력을 알 수 있는데, 이 친구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를 풀어놓는 것이다. 요즘은 문제집의 답지가 인터넷에 떠돌고 있고, 문제를 찍어 올리면 풀이를 알려주는 '콴다'라는 앱도 있다. 이렇듯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었고  "너 답지 베꼈지?"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사실 수업을 하면서 제일 난감한 것이 답지를 베끼는 아이를 만날 때이다. 답지를 베끼고 싶은 마음은 언제 드는 것일까? 숙제는 하기 싫고 야단은 맞기 싫을 때, 내가 당면한 문제를 회피하고자 하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심리다. 누구나 회피하고자 하는 순간은 늘 있는 법이다.  대충 채점을 하다 보면 답지를 베낀다는 것은 짐작이 간다. 하지만 일단 기회를 먼저 주며 설득의 과정을 거친다. 그것으로 안 되는 경우는 답지를 구할 수 없는 문제를 제공한다든지 꼼꼼하게 점검을 한다. 아이는 답지를 베꼈는데 선생님이 모르고 넘어간 경험이 한두 번 쌓이다 보면 대수로워하지 않을 수도 있다. 선생님의 대충이 그런 습관을 만들 수도 있다. 모르는 문제는 스스럼없이 물으라고 하고서는 이것도 모르냐며 질책했을 수도 있다.


답지를 베끼는 방법으로의 도피는 문제에 대한 두려움도 한 몫한다. 수학 문제의 여백을 채워가며 논리적인 전개를 해 가는 과정은 그리 만만치 않고 여백을 채워 갈 힘이 없이 두려움과 그에 대한 수치심에 사로 잡혀 버릴 수도 있다. 어쨌든 무너진 신뢰 속에서 공부를 해야 한다면 나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답지를 베낀 심증이 들 때면, 일단 차근차근 대화를 나누어 이런 습관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는 것이 첫 번째 과제이다.  시간 부족이라면, 매일 해야 하는 분량을 함께 정하고 체크를 해 주기도 한다. 인터넷상의 답지나 앱을 습관적으로 본다면 과제를 오픈된 공간에서 하도록 하고 핸드폰 관리를 하는 것도 좋다.

  


답지를 베끼고 한 뒤 아이들은 마음이 어땠을까?

'들킬까 봐 조마조마했다'

' 당연하겠지만 성적도 오르지 않고 해서 그만두었다'

'선생님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나를 자책하게 되었다'

'나를 위한 공부인데 나를 해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



아이들은 마음의 불안을 느낀다.

스스로 자책까지 한다. 무엇이 잘못된 것 같기는 한데 바로 잡으려니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 어른들도 이런 순간이 있지 않은가?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도피하고 싶은 순간,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아이한테 이야기해 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아이가 반성은 할지언정 스스로 자책은 하지 않도록 어른들은 도와주어야 한다.



M은 결국 학원을 그만두었다. 솔직하게 질문하라고 이야기하지만 쉽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내가 먼저 솔직하지 못했다. 답지를 베낀다는 것을 짐작했음에도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지 않은 것이다. 이야기를 꺼낼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지만 짐짓 회피했다. 고등학교 1학년 정도면 이것이 안 좋은 습관이라는 것 정도는 알겠지, 슬쩍 찔러주면 눈치채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열 입골 살, 그 나이가 그것을 스스로 깨칠 나이는 아닌데, 그리고 더 솔직히 고백하건대 귀찮은 마음도 컸다.



아이에게 진중하게 물었어야 했다.

수학보다 아이의 마음이 먼저였어야 했다. 부디 다음에 만나게 될 수학 선생님과는 잘 소통하며 수학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가지며 십 대의 수학을 잘 마무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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