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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Feb 16. 2017

녹터널 애니멀스 ~끝없는 욕심에 관해~

~라라랜드의 스핀오프 에필로그 버전~

감독 톰포드.

감독이란 호칭보다 더 유명한 그의 전직에 대해 가볍게 정리를 하고 가보자면,


명품 브랜드[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구찌의 [이브생로랑] 인수 후 디렉터 겸직.

fade to black이라는 영화 제작사 설립,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 브랜드 론칭...


그리고 영화감독이라는 타이틀로 데뷔한

2009년 [싱글맨]


콜린퍼스와 니콜라스 홀트의 충격적인 퀴어 영화로 더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관객들이 눈여겨 보았던 것은 일류 디자이너의 감독 도전기였다.


장르가 다른 예술이라도 대중에게 어필하는 방법은 동일했던 것인지, 스타일리쉬하고 정돈된 디자인 된 듯한 연출은 호평을 받았다.


무엇보다 그가 알고있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영상에서도 통한 다는 것을 증명해 주다.


그 감독의 두번째 연출.


ㅡ 녹터널 애니멀스 ㅡ


영화는 주인공의 현재와 과거의 모습, 그리고 현실에서 여 주인공 수잔이 전남편인 에드워드에게 받은 소설을 읽어가는 이미지의 액자구성으로 무수하게 교차 편집된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라는 명백한 계급이 나뉘는 현대에, 가진 자의 편에서 자라온 수잔은 부모의 계급론을 부정하며 순수한 예술 혼과 꿈을 가진 에드워드에게 반해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다.


상류층에서 자극에 길들여져 살아와 서민들의 평범함을 이해하지 못해서 인지, 평범한 에드워드가 만들어낸 이야기로는 그다지 감동을 받지 못하는 수잔.      


에드워드에게 크리에이터로서는 견디기 힘든 굴욕을 안겨주며 다투게 된다.

나름의 아이텐티티를 추구하며 만든 자신의 작품을 아무렇지도 않게 평가절하 해 버리는 여주에게 분노하며, 일련의 사건을 겪은 후 결국 수잔의 바램대로 헤어짐에 이른다.      


결국 이도 저도 만족하지 못한 여주는 아마도 자신도 모르게 생겨난 본능으로 부모가 얘기하던 계급에 맞는 상대에게 정착해 살아간다.     


‘그들만의 잔치’ 같아 보이는 대중적이지 않은, 예술작품을 제작 기획 전시를 관장하며 여전히 ‘최상위층’으로 살아가고 있는 수잔.  

어마어마한 저택에, 멋지고 잘 사는 남편, 어울리친구들마저도 비슷한 계층을 대변하인물들뿐이다.


 이미 잘 먹고 잘살고 있는 현재 껄끄럽게 자꾸 걸리는 만족스럽지 못했던 하나의 결점.

과거 순수한 예술 혼을 가진 남편을 무참하게 내치고 말았다는 자책은 평소 알 수 없는 열등감으로 표출된다.     


그러던 어느 날, 집으로 배달되어진 옛 남편의 소설.

수잔은 늘 자신을 따라다니던 열등감과 과거 자신의 행적의 반성하는 의미에서 인지,

그것을 읽어가기 시작한다. 현재 자신이 처한 모습과 과거의 에드워드와의 추억, 그리고 과거의 자신의 모습이 떠올려지는 소설의 전개.

소설을 읽어가며 서서히 변하기 시작하는 그녀의 감정은 행동까지도 지배하기에 이른다.        

                          

현실과 기억 속의 과거, 감정의 변화, 그리고 그 사이 시간의 매개체가 되어주는 전 남편의 소설.


영화는 헷갈릴 정도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소설 속 내용을 왔다 갔다 하는 교차 편집으로 아마도 극 중 ‘수잔’의 감정변화처럼, 혼란을 겪는 심리를 간접적으로 묘사한다.     


얼핏 정 반대의 상황을 설정해 놓은 듯 하지만, 에드워드 소설 속 인물들의 이야기는 

결국 자신에게 굴욕을 안겨주며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전 아내, 수잔에게 바치는 감정적인 복수극이다.     


소설 속 주인공, ‘토니 역시 에드워드 자신을 대변한 인물.


극 중, 가장이지만 약해 빠졌기에 지키지 못했던 자신의 가족. 즉, 잘나가지 못해, 사회적 약자였기에 버림받았었던 것만 같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소설 속 범인들은, 이야기 안에서누구한테 시비 걸고 싶어 안달 난 동네 양아치의 모습이지만, 명백하게 수잔을 대변하는 모습이다.     

범죄를 저질러 놓고 뻔뻔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즐겁게 살고 있는...


그리고 법으로 처리하자니 이래저래 설치되어 있는 방어막들로 교묘하게 피해가는 비겁하고 교활한 작태.


결국 이야기 안에서 복수는 성공하지만,

양아치는 최후를 맞이하는 순간에도 뻔뻔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기억된다.     


결국 에드워드가 전 부 수잔에게 소설을 보낸 것은     


‘너한테 버림받았던 내 모습의 분신이니, 똑바로 잘 봐둬! 그리고 각오해!’     


라는 선언.        

       

영화에서 여 주인공 수잔은

물질만능주의, 결과제일주의의 현대를 살아가는 일부 현대 여성의 비판의 목적으로서 묘사된다. 

그 여주인공 수잔의 “욕심”에 관한 부분에 대해 파고들어 보려 한다.     


약간의 비아냥의 의미가 섞이어 최근 들어 특히 많이 사용되는 표현 ‘금 수저.’


같은 의미의 금 수저를 물고 태어나 자라난 수잔은 초반에는 ‘우리는 다르다’ 라며 계급론을 펼치는 부모에 반대하는, 그나마 깨어있는 여성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다 가진 채 부족함 없이 자라나 자신이 지금 가지지 못한 것마저도 욕심을 내는, 부모보다도 더한 욕심쟁이임이 명백해진다.     


반면, 가난하지만 예술 혼으로 자부심이 넘쳤던 전 남편 에드워드. 수잔은 에드워드의 이 예술 혼을 존경하며 미래를 같이 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를 안고 반대를 무릅쓴 결혼을 했다.   

그렇지만,


 ‘사람 사는 데에 이 정도는 해야 하는 거, 당연한 거 아니었어?’     


라고 생각하기라도 하는 듯.

수잔의 성장과정, 즉, 자라온 가정환경이 형성한 ‘먹고 사는 부분’에서의 ‘당연했던’ 부분마저도 너무 달랐던 일상에서부터 문제가 되기 시작한다.


금방이라도 유명 작가가 되어 성공할 것이라 믿었던 에드워드의 부진에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  계획성이 없다  는 이유로 굴을 주고 마는 수잔.   

  

수잔과 에드워드의 ‘평범함’이라는 기준은 다를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못했다.     


결국 조건적으로 완벽한 현재의 남편을 만나

수십 년을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채워지지 못했던 과거의 ‘미련’은 여전히 가슴속에 품고 있는 듯 했다. 


물질적인 외부 조건들이 충족되고 나니  

철없던 때라고 여겨졌을 법한 자신의 과거 남편에게서 느꼈던 순수한 예술 혼이 다시 그리워지기 시작했던 것.

그 와중에,

그 전과는 달리 꽤나 몰입력있게 만들어진

전 남편의 소설에 뭔가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 건지,


찌질해서 무참하게 버렸던 과거 기억 속 남편의 이미지 미화되어 좋은 방향으로 재편되기에 이른다.     


무덤덤해진 현재 남편과의 관계에서 무료함을 느껴 다시 새로움을 갈구하던 차에,

 

죄책감으로 잊어버리고 싶었던 과거의 남편의 재등장으로 다시 못다 이루었던 예술 혼에의 미련이 되살아 났다고도 보여진다.



결국 수잔은 물질과 정신, 모든 것을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 이다.


극 중의 다른 인물들과 비교해 보면 수잔이 얼마나 많은 것을 손에 쥐고 놓치고 싶지 않아 하는 지

알 수 있다.     


수잔의 작품 전시장에서 만나는 수잔의 친구.

그녀는 근황을 묻는 수잔의 질문에   

  

자신은 게이 남편과 살아가지만, 그 관계가 성욕보다도 오래갈 수 있다며, 그에게는 자신이 첫 여자일 것이 아니냐며, 어떠한 한 가지의 가치는 포기하고 남은 것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수잔이 경멸하는 어머니 역시, 부와 명예를 택했으니 속물처럼 보여질 수 있다는 주변 시선은

포기한 모습으로 비추어 진다.     


한 가지를 택하면 남은 한 가지는 포기하고 만족하며 살아가는 수잔의 주변인들.

그렇지만 수잔은 어느 한 가지도 놓치려 하지 않는다.          

끝없는 욕심.

어쩌면 그것 때문에 수잔은 자신의 전시작품끝까지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작가, 예술가의 작품이란 보통 자신의 모습과 이야기가 투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영화의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강렬한 이미지 역시 바로 수잔 자신의 모습이다.      


스스로 정크문화를 상징했다고 하는 그 작품은

지나치게 살이 찐 나체의 여성들이 너무나도 당당한 표정으로 막춤을 추고 있는, 보기에 다소 흉한 이미지이다.


강렬한 색의 대비 때문에 더 충격적으로 보여지기도 하지만.     


대부분 살이 찐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인 ‘식욕’을 억제하지 못한, 욕심을 제어하지 못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마련이고,


날씬하고 예쁘고 잘생긴. 소위, 관리된 사람이 각광을 받는 사회에서, 풀어진 모습의 나체로


 ‘누가 뭐래든 나 하고 싶은 데로 살 거야’


라고 주장하는 듯한 모습.

   

주변을 신경 쓰지 않는 다는 건 그만큼의 부나 권력을 가진 자신감에서 오는 행동인 경우가 많으니, 비슷한 위치의 자신 역시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욕망의 투영같아 보였다.


만든 본인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려 할 테지만...     


무슨 떡고물이라도 얻어먹으려는 듯

그것을 관람하러 온 상위층의 동료들은 작품에 극찬을 아끼지 않지만,


수잔 자신이 자신의 작품을 그다지 만족스러워 하지 못하는 것은 작품이 자신을 투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억지로 부정하고 있는 것 같은 의미로도 보였다.    

 

톰포드 감독

예술인들이 갖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긍지와 자존심. 누군가의 입에 오르내리며 평가되어지고 마는 현실.


디자이너 출신의 감독답게 자신도 인생의 어느 순간 고민했을 법한 내용을 이야기로 만들어 낸 듯한 느낌이다.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의 심정은 그것을 소비하는 쪽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자신이 기획하고 제작하는 작품, 보통 그것은 혼자 만족하는 목적만이 아닌, 누군가에게 보여져 인정을 받고, 어떤 상품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  


당연히 크리에이터란 누군가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싶고, 다시 찾게 만들고자하는 욕심을 갖게 마련이다.      


그러나 주로 ‘돈’을 지불하며 그것을 소비하는 쪽의 사람들은 그 제작에 들어갔을 노력이나 고민, 좌절 등을 모두 이해해 주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가진 자본과 교환했을 때의 가치만을 따지게 마련이니, 평가는 냉혹해 질 수밖에 없다.      


극중 에드워드는 사랑하는 수잔에게 보여주려 공개했던 소설에 대해 혹평을 듣자 몹시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누군가를 지극히 생각하면서 사랑과 정성을 담아 만들어낸 자신의 분신을 ‘평가’라는 잣대로 깎아 내려버린 듯한 기분에.     


후에 수잔 자신이 예술작품을 제작하는 입장이 되자, 옛 남편인 에드워드의 그런 심정을 뒤늦게나마 깨달아 죄책감이 더 커졌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예술가들의 사랑, 이별, 미래...

이미 극장에서 내려오고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까지 어마어마한 호평으로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라라랜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아름다운 배우의 연기와 춤, 노래, 음악, 연주 등으로 멋지게 포장되었던 잔혹했던 라라랜드의 본심.

 (물론 라라랜드의 감상도 그렇게 작성한 바 있다.)  https://brunch.co.kr/@yhc132/38


녹터널 애니멀스는 거의 같은 구성을 취하지만 포장하지 않은 민낯 그대로의 잔혹극을 보여준다.     


가난하지만 예술가를 지향하는 남자.

꿈과 현실 중 어느 곳에 비중을 더 두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지만 그의 연인 여주인공은 결국 현실을 택해 잘나가는 남편과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남자는 버림받아 여전히 여자를 그리워한다....    

 

예술의 장르와 여성의 설정 몇 가지를 제외하곤 이건 미러링에 가깝게도 같은 설정이다.


[라라랜드]의 스핀오프, 혹은 이 후의 이야기인 에필로그라도 봐도 무방할 정도로 같은 감정을 지니게 해준 영화이다.     

여자에게 버림받은 남자의 예술을 통한 감정적 복수극. 물론 톤은 정반대다.     

 

건축학 전공에 패션, 포토 등에서도 일디자이너로 꼽혀왔던 감독 톰 포드는 이번 역시도 전공을 살려 정돈되어 깔끔한 미장셴과 스타일리시한 영상으로 한 컷 한 컷에 공을 들인 느낌이다.     


배우의 연기, 소품, 화장, 의상, 등장하는 미술 작품들, 인테리어, 화면의 구성, 컷의 호흡...


영화라는 것이 보통은 스토리텔링이 기본이지만, 영상 안의 감각적인 부분에서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뽐 낸 작품이 아닐 까 싶다.     


에이미 에덤스와 제이크 질렌할의 연기 역시도

선 하나하나 까 신경쓴 듯한 감독의 연출에 절대로 뒤지지 않는다.         


미적으로, 가치 있는 상품을 만들어내던 감독의 전 직업에서처럼


세밀한 곳의 완성까지 신경 써서 소장가치가 있는 영상 예술 작품으로 분류되기를 원하는 감독의 열정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좋은 컨텐츠를 나름 해석하며, 훌륭한 이야기꾼이 되고싶어 이야기도 만들어가는 중 입니다. 괜찮으신 분들 방문 부탁 드리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http://m.me.co.kr/?mode=cdetail&itemNo=206

 http://m.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628943&page=1#volum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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