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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변화 Jul 03. 2022

주례사

주례사   


덜컥 주례를 맡겠다고 말해놓고 나서 그동안 참석했던 결혼식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양가의 부모님이 화촉을 밝히고, 사회를 맡은 친구가 마이크를 잡고, 신랑과 신부가 입장하고, 하객들이 축하를 합니다. 그리고 신부가 부케를 던집니다. 하지만 주례는? 그리고 주례사는? 주례사는 단 한 마디도 안 떠올랐습니다. 심지어 제 결혼식마저도요. 이렇게 일찍 주례를 맡게 될 줄 알았다면 주례사를 조금이라도 들어 둘 걸, 하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한 달 전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갑작스럽게 주례를 부탁받아서 조금 당황했습니다. 제가 누군가의 주례를 맡기엔 인생의 경험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비록 제가 아니더라도 이 자리에 계신 하객 중에는 부부로서 첫걸음을 내딛는 두 사람에게 좋은 말씀을 해주실 분이 많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이 자리를 빌려서 신랑과 신부에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오랜 세월을 통해서 체득한 경험과 지혜라기보다는 두 분의 선생님께 대한 학부모로서의 감사와 결혼 생활을 먼저 경험한 이의 약간의 당부입니다.   

우선 신랑 ㅇㅇㅇ, 신부 ㅇㅇㅇ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희 아이들을 잘 가르쳐 주시고. 제게 결혼식 주례라는 과분한 역할을 맡겨 주셔서요.   


올해 대학에 입학한 큰 아이 얘기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 큰 아이는 모범적인 학생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말 그대로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었습니다. 저희 부부의 목표는 큰 사고 없이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대학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재작년 가을이었습니다, 큰 아이가 학원을 다니겠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큰 아이의 눈 속에서 심지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조그맣지만 굳고 단단한 심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심지가 선생님들의 믿음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전까지 선생님들처럼 큰 아이를 포용하고 한결같은 믿음을 준 선생님들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덧붙여 신랑 신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말장난 같지만 저는 ‘배우자’라는 단어 속에서 '배움'을 떠올립니다. 남편에게는 아내를, 아내에게는 남편을 의미하는 이 단어의 발음이 묘하게도 ‘배움’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되고 아내가 되는 일은 타인을 알아가는 일이면서 동시에 배워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연애를 했어도, 또 아무리 오랫동안 같은 직장에서 생활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와 부부의 연을 맺는 일은 그 사람을 이해하고 동시에 배워가는 일입니다. 

예전에 몰랐던 것들을 발견하고, 서로를 닮아가고 배우는 일이 부부가 되는 중요한 과정임을 꼭 알았으면 합니다. 덧붙여 그 배움 속에서 항상 서로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두 분 모두 잘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인생에서 행복은 ’나’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맺은 ‘관계’로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행복을 만드는 관계는 꽃길만을 걷는다고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서 평생을 살면서 아무런 갈등이 없을 수는 없으니까요. 

저는 소설 읽는 걸 좋아합니다. 제게 매력적인 주인공이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완벽한 능력을 지니게 된 인물이 아닙니다. 불완전하지만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성장해 가는 인물이죠. 관계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행복하고 성숙한 관계는 완전한 모습으로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극복해가며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갈등이 있다면 외면하지 말고, 인정하고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제가 전하고 싶은 두 번째 당부입니다.   


소설 얘기가 나왔으니 질문을 하나 해볼까요? 수많은 연애 소설 속에서 사랑을 완성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뭘까요? 

저는 기다림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단 연애 뿐 아니라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하고 기다려주는 일, 그게 신랑 신부가 바라는 교육의 모습이듯 사랑 또한 그러합니다. 사랑한다면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철학자의 말처럼 우리가 가장 귀중한 선물을 얻는 것은 그것을 찾아 나설 때가 아니라 그것을 기다릴 때입니다. 귀중한 선물이란 건, 어쩌면 기다림 그 자체인지도 모릅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기다림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제가 준비한 주례사는 여기까지입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 신랑 신부 또한 저처럼 주례사 따위는 한 마디도 기억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저의 바람은 이렇습니다. 먼 훗날 결혼을 한 달 앞둔 신랑이 찾아와 결혼에 대한 조언이나 주례를 부탁하면, 매몰차게 거절하지도 말고 망설이지도 말고 두 분의 결혼에서 얻은 깨달음을 꼭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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