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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변화 Oct 09. 2022

괴담(1)

1부 쓰기 전

괴담     


“후송 당직이 병원 나올 일 절대 없어. 그냥 이름만 올려놓는 거야.” 

여자 친구 만나러 서울로 올라가야 하니 일요일 후송 당직을 바꿔 달라고 했다. 나야 어차피 주말에도 관사에 있을 거였으니까. 후송 당직이 병원에 불려 나올 확률은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였다. 국군대전병원이 대전 이남 군병원 중에서 최상위 병원이었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더 상급의료기관으로 후송 갈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환자는 왜 다친 거예요?” 당직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신경외과 백 대위에게 물었다. 

“117전투비행단에서 나흘 전에 경막하뇌출혈로 와서 수술했는데 아직 코마에요. 보호자들이 병원장 실 가서 쌩난리를 쳤대요. 깨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어요. 그래도 어떡해요. 부대에서 다쳐서 죽게 생겼는데 보호자 말 대로 해 줘야죠.”

백 대위는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스테인레스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껐다. 전화기가 울렸다. 

“야 미안 미안. 내가 일부러 그랬겠냐. 다음 주에 크게 한잔 쏠게.” 

알았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으려고 했는데 호종이 말을 이었다. 

“야, 진짜 미안한데, 부탁 하나만 좀 하자.”

“뭔데?”

“너 J대학 병원 간다며? 거기가 내가 트레이닝 받은 병원이잖냐. 그래서 말인데......” 호종이 말끝을 흐렸다. “거기서 내 전공의 때 짐 좀 받아다 주라. 미리 얘기해 놓을 테니까 그건 걱정 말고.” 

중환자실에 맡겨 놓겠다고 했다. 딱히 특별한 수고가 들 일은 아니었다. 

“그럼, 너만 믿고 엉아는 서울 갔다 올게.”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호종이 전화를 끊었다. 


TV에서는 1977년 제작한 영화 <미드웨이>가 끝나가고 있었다. 엔딩 크레딧이 내려올 때 백 대위가 DVD를 껐다. 백 대위는 전쟁사와 무기에 대해서 엄청난 지식을 가진 이른바 밀덕(밀리터리 덕후)였는데 당직 때마다 할리웃 전쟁영화를 가져와서 당직실에서 보곤 했다.

“어떻게 다쳤는지 못 들었죠?” 백 대위가 담배를 꺼내서 불을 붙였다. 

“요즘에 2층 독방 앞에 헌병이 보초 서고 있는 거 봤어요? 거기 감금돼있는 애가 가해자예요. 걔도 응급실 거쳐서 입원했던데. 정신감정 받으려고 후송된 거래요.”

“무슨 정신감정이요?”

“그 새끼 지난 달에 신병으로 117전투비행단에 배치됐는데 완전 싸이코예요. 사회에 있을 때도 분노조절장애 비슷한 게 있어서 한두 번 상대방을 심하게 다치게 한 적이 있었나 봐요. 이후로는 그런 일이 있으면 자신이 그 상황을 알아서 피해 다녀 별문제가 없었는데 군대는 빼박이잖아요. 

피엑스 병이었는데 선임이 교육한다고 몇 번 갈구니까 벽돌로 머리를 찍은 거예요. 두피에 여러 군데 상처가 있는 거 보니까 여러 번 내리쳤을 거예요. 그리고 피엑스에 불도 질렀어요. 다행히 사람이 없는 시간이어서 화상 피해자는 없었어요. 아버지가 심신미약으로 빠져나가려고 정신감정 해달라는 거겠죠. 미친놈은 맞지만 사람 죽인 사람 중에 제정신으로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백 대위가 말을 마치고 중환자실에 전화를 걸어서 후송 준비가 잘 되고 있는지 확인했다.

“의무병은 누가 가요?”

“권상욱이요”

아, 백 대위가 짧게 탄식처럼 내뱉었다. 

“왜요?” 

“별거 아니에요. 엉뚱하지만 재밌는 놈이에요. 말 많이 시키면 재밌는 얘기 많이 할 거예요.” 

백 대위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날씨가 썰렁하니가 갈 때 가운 말고 겉옷도 가져가요. 수송헬기가 항작사 아니고 공군이죠? 그러면 블랙호크가 아니라 휴이겠네요. 공군 애들은 목적지까지 데려가긴 하지만 데려오지는 않아요. 군의관을 기다려줄 만큼 기름이 여유가 없다나 어쨌다나. 지갑도 가져가시고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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